5초의 마법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예전부터 감정에 오르락 내리락이 있었다. 이게 참 싫었다. 우울해지지 않고 싶어서 감정의 내리막일 때 빨리 빠져나올 수 있을 방법을 여러모로 시도해봤고, 그 결과 나에게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별 것 아닌 그저 '지금'에 집중하는 것. 대부분의 우울감은 현재가 아닌 곳에 있을 때 스멀스멀 찾아오곤 했다. 몸은 이곳에 있으면서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과거에서 허우적대거나, 예상할 수 없는 미래에서 낑낑대거나. 망상론자인 나로서는 언제 어디서든 현재에서 벗어나 곧잘 옆길로 새곤 했던 것이다.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기에 가장 단순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은 숫자를 5까지 세는 것이다. 내가 어딘가에서 허우적대고 있음을 감지했을 때, 숨을 들이 마신 뒤 천천히 내뱉으며 5까지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을 셀 때까지 어떤 잡생각에서든 벗어나 스스로를 현재 위치로 데려다 놓아야 한다는 게 룰이다. 그렇게 현재로 스스로를 돌려놓았다면, 이제 무조건 현재의 일을 한다. 글쓰기든, 청소든 그게 무엇이든. 아까의 얽매어있던 생각으로부터 조금이라도 거리를 둘 수 있을 때까지 현재의 일만 한다.
이 방법의 힌트는 내가 우연히 보게 된 한 유튜브 영상에서 얻었다. 미루기대마왕인 사람들에게,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사람들에게 팁을 준다는 말에 '뭐야 나한테 하는 말인가?' 하며 봤었는데 그 영상에서 알려준 팁이란. 싱겁게도 숫자 5까지 세는 것이었다. 다섯까지 다 세기 전에 미뤘던 일을 바로 시작하고 밍기적대던 몸을 일으키고. 그냥 지금 바로 행동하면 된다고. 고작 숫자를 세는 것뿐인데도 정신을 차리게끔 해주는 효과가 꽤나 좋았다. 단순하고도 확실하게 나의 멱살을 잡고 일으키는 방법이랄까. 너, 다섯 셀 때까지 해.
요즘에는 이 5초 세기의 마법을 행복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쓰고 있다. 전에는 우울해지지 않고 싶었다면 이제는 행복해지지 않아도 되고 싶다. 행복이라는 가치에 별로 기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 모든 행동들의 목표를 행복으로 가져가고 싶지 않다. 이게 만약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낙담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들고, 결과적으로 추구한다는 이 행복이란 과연 뭘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사실 그 누구보다도 행복을 바라고 또 원하는데 그에 비해 스스로가 취약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바라고 또 좋아하는 상태를 떠올려보면 다른 생각이나 걱정 없이 오롯이 현재에 집중할 수 있을 때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고 꽉 찬 느낌을 얻는 것. 어쩌면 이 상태를 행복과 비슷하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행복은 그저 이렇게 스스로 꽉 차도록 보낸 순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큰 물결이자 방향일 뿐이라고, 내가 달성해야 할 하나의 목표나 지향점이 아니라고 생각해본다. 행복해지지 않아도 된다. 그냥 지금 순간에 충만하자. 이를 위해 또 숫자 다섯을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 술 역시도 현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탁월한 기능을 한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사람, 계란말이, 소주에 일차원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술을 좋아하는 건가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