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키고자 하는 나의 절반
갑작스레 회사 본부 내에서 공유회를 한다는 공지가 왔다. 비슷한 연차의 사람들이 서로 친해질 수 있도록 각자 소개를 하며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지 끝에는 과제가 하나 달려있었다. "각자 자기소개 준비를 해오세요."
자기소개 해보세요. 정말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두 번의 신입사원 시절에도 내가 했던 자기소개라고는 3초가량의 짧은, 소위 이름과 포부 정도를 씩씩하게 외치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파워포인트 장표를 만들어 서른명 가량의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하는 일은 참으로 간만이었다. 게다가 아예 처음 보는 사람들도 아니고 오다가다 혹은 업무적으로 마주쳐 얼굴은 낯익지만 잘 알지는 못해 낯선,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려니 괜스레 머쓱하고 쑥스러웠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맬 즈음 떠올린 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굴튀김 이론'이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예를 들어 굴튀김)에 대해 설명해보라는 말이었다. 이를 얘기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대상과 나와의 상관관계부터 말하게 되면서, 더 깊게 들어가면 결국에는 이것이 나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고.
자연스럽게 나 역시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보통 누군가가 시켜서 하게 되는 회사 업무보다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하고 있는 것들이 결국 나에 대해 더 잘 설명해줄 것 같아서였다. 지금의 내가 좋아서 하고 있는 글쓰기, 힙합 디제잉,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음주, 그리고 프리다이빙은 내가 어떤 걸 선호하고 또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점들이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단순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는 의미를 넘어 내가 지키고자 하는 나의 절반이기도 했다. 내가 보내는 하루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내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것들로, 혹은 타인이 규정하는 나의 모습들로 채워진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의 시간이 그런데, 이러한 타의의 힘으로부터 매몰되지 않기 위해 전보다 더 나만의 절반을 필사적으로 지켜나가게 됐다. 자발적이고 솔직한 나의 모습으로 하는 것들로 하루에 대한 주체성을 조금이라도 가져가야 내가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부 공유회 때 다 함께 모여 공유한 자기소개들로 각자의 절반을 살짝씩 엿볼 수 있었는데,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생기기도 했다. 아 이분은 슬램덩크 덕후라던 분, 저분은 등산 좋아하셔서 히말라야 가셨다는 분. 각기 다른 뾰족한 모양새로 자신의 절반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에 공감도 되면서 나를 다시 돌아보게도 되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나의 절반이 잘 있는지 확인차 생각해 볼만한 과제다. 자기소개 해보세요.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모난 구석을 가진 사람들, 뾰족함을 연마하거나 닳지 않도록 애쓴 이들. 여전히 자신 안에서 미제인 감정을 지고 살아가는 어른들. 그 모습이 고집스럽고 세상과 불화하는 것처럼 여겨져도, 나만은 다르게 보고 싶다. 그들은 뭉툭해지기 쉬운 세상에 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주시하고, 영영 풀 수 없을지도 모를 엉킨 실을 끝내 잡아당기려고 한다. 나는 그런 예술가들이 좋아서, 이들이 지켜낸 뾰족함으로 무언가를 꿰뚫는 송곳을 만들었으면 해서, 그들에 대한 글을 계속 쓰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 이현아, <여름의 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