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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이너프 Oct 03. 2024

우리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현대사회는 참으로 특이한 세상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콘텐츠와 네트워크가 넘쳐난다. 이는 한편으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제공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죽을 때까지 얼굴도 모르고 살았을 사람의 일상과 여러 정보를 알게 되기도 하고, 직접 경험하지도 보지도 못할 것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가능성의 홍수'라는 느낌이 든다. 


이와 같은 변화로 인해 유용한 정보를 손쉽게 얻는 등 많은 혜택을 누리기도 하는데, 그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인기 있는 혹은 유명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점이다. 유튜브를 통해 유명해지면 많은 구독자나 팔로워가 생기게 되는데, 이 말은 내가 믿고 지지하는 그 사람의 말과 생각에 영향받을 가능성이 많아졌다는 뜻이 된다. 특히 요즈음에는 자기계발, 심리, 인간관계 대처 등 우리가 부모나 학교로부터 제대로 배우기 어려웠던 것들을 가르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자신만의 정체성이 확고하지 못하거나 과거 믿을 만한 어른들로부터 충분히 정보를 습득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좋게 바라보는 그 유명인을 마치 멘토나 우상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보다 매우 위험한 일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과연 유익하고 좋은 말 혹은 옳은 말을 하는 그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존재인가를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서 신뢰할 만한(trustworthy)이란 말은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단어이다. '누군가를 신뢰할 만 한가'라는 질문은 자아심리학(ego psychology)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자아심리학은 한 개인의 건강한 자아발달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것을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정신분석의 한 분파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자아란 무엇일까? 그건 그 사람이 얼마나 성숙한 심리구조를 가지고 있느냐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자아가 건강하게 발달된 사람은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해도 그것의 진실의 정도를 가려들을 수가 있다. 말의 진위를 파악하고, 그것의 공정성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자아능력이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나 삶의 철학에 대해 그럴듯한 내용을 알아듣기 쉽고 꽤나 깊이 있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감동받고, 배울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에 큰 고민거리나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그 사람에게 고민상담 같은 것을 신청하기도 한다. 마치 내가 우상처럼 생각하는 그 존재가 내 상황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처음에 어떤 유명인의 콘텐츠를 보고 매료된 것은 그가 하는 말이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할 정도로 그럴듯한 것이거나 멋지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건강한 자아발달이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한다. 성숙하지 못한 심리구조를 가진 사람은 누군가가 하는 말을 마치 그 사람의 실제 인간적 깊이와 동일시한다. 통찰력 있고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마치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는 우상이 되고, 그 사람의 말은 어느 경우에도 맞을 거라고 은연중에 믿게 된다.


반면 성숙한 심리구조를 가진 사람은 어떠한 말에도 늘 가능성과 의문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닐지도 몰라"와 같은 마음이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누군가를 아주 좋아하거나 흠모하더라도 가끔 그 대상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편향된 말을 할 때 그것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우상화하는 그 대상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누군가의 말의 내용을 그 사람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심리상태, 즉 자아상태가 어떠한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고 싶은 자기애적 욕구로 인해, 타인의 흠을 드러냄으로써 영웅이 되고 싶은 영웅심리로 인해, 단지 인기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돈을 벌고 싶은 욕구로 인해 얼마든지 멋진 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말들에 휘둘리기 쉬운 사람은 늘 그 유명인이 정말 그런 말을 할 만한 사람인지를 질문하면서 들을 필요가 있다. "저 사람은 과연 그 모든 내용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온전히 이해하고 저 말을 하는 걸까?". 


보고 즐길 것들이 많아진 만큼 여러모로 '가짜'가 넘치는 세상이다. 뉴스도, 유튜브 콘텐츠도 가짜가 많다. 가짜라도 그럴듯한 내용을 보여준다면 따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불안을 줄이고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들이다. 자기 자신으로 채워져 있으면 그것들이 하나의 견해일 뿐 크게 동조하거나 비난해야 할 것이 되지 않는다. 자기심리학자 코헛은 사람은 누구나 '이상화 대상'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나에게 뭔가를 줄 수 있는 대단하고 선한 존재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여기면 여길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 강해진다. 이렇게 부족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구원해 줄 좋은 대상을 밖에서 찾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기 안의 해결되지 못한 욕망이다. 그래서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만 같은 사람을 보면 내 욕망을 실현한 대리자로 느끼고 그것을 투사하게 된다. 


그럼 지금과 같은 세상에 우리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물론 타인의 말은 믿을 수 없으니 자기 자신만 믿자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도움과 조언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자기 자신을 믿어도 좋고 존경하는 누군가의 말을 믿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그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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