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뻔한 감성
추적추적한 날이다.
아무런 음악 없이도 소리로 축축해지는 날.
밤이 아닌 시간에 멋대로 밤을 만드는 하루. 비는 늘 ‘울적한’취급을 받는다. 비가 오면 여러 사람들이 감상에 젖어들곤 하니까.
‘감상에 젖는다’라는 말과 ‘우울해진다’라는 말은 비슷한 느낌으로 쓰인다. “비오는 걸 좋아해”라는 사람들의 말은 “슬픔이나 어두운 분위기 따위를 즐겨.”라는 말로 들리곤 한다.
짙은 안개 때문일까? 잿빛 하늘 때문에? 눈물의 상징적 의미로 쓰여 와서? 그것도 아니면 ‘떨어진다’는 속성 때문일까? 나 역시 비오는 날이면 젖은 기분이 들고, 성대가 무거워지고, 몸의 근육들이 잔뜩 늘어진다. 어디선가 부딪히며 튀기는 물소리나, 비 온 뒤 맡아지는 공기의 체취나, 바람에서 느껴지는 축축함 따위를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변의 법칙처럼 나는 가라앉는다.
그러다 문득, 우울함의 원인이 ‘생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각은 많을수록 그 끝은 부정(否定)을 향하기 때문에 비오는 날 잠기는 생각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고. 깊숙이 잠겨있던 생각들이 우수수 떠오르고, 얕게 흘러갈 수 있는 걱정들이 빗줄기에 유독 깊게 패일뿐이라고. 축축한 날은 그저 ‘생각’을 조심해야하는 날이라고 단정 지었다.
어쩌면 이건 비오는 날의 프레임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