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수 없이 너를 놓았을 때, 비로소 난 살았다.
“걔랑은 아무 것도 같이 하고 싶지 않아.”
친구가 헤어진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을 때 불현 듯 누군가를 떠올렸다.
뭘 해도 지루해하던 모습,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던, 나오는 길을 귀찮아하던 너의 모습.
너도 나와 아무 것도 같이 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네가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니야?”
“바쁜 건 사실이지만, 더 바빴을 때는 많이 다녔는데…. 사실 그냥 식은 거지 뭐.”
“…그럼, 그렇다고 말해줘야지.”
“식었다고? 그런 말을 어떻게 대놓고 해.”
“…그게 나을 텐데.”
그게 나을 텐데. 그게 덜 아플 텐데.
그 편이 포기가 더 빠를 텐데.
동정을 하려거든 호의부터 걷어가야지.
아무 것도 같이하기 싫다고, 뭘 해도 재미가 없다고. 네가 잔인해져야지.
우리에게도 벤치에만 앉아있어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온종일 설렜던, 별 다른 걸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흔적도없이 사라지던 그런 순간들.
그러나 내가 하던 걱정들이 너에게 잔소리가 되던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옛기억은 나에게만 추억이었고, 기대였고, 미련이었다.
“지금 나 힘든 거 알잖아. 넌 왜 이렇게 이해심이 없냐.”
그렇게 말하는 네 변명을 오롯이 믿었다.
자책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이해심이 없을까.
좀 더 이해해야지, 좀 더 잘해야지.
나쁜 건 너였는데, 더 사랑한단 이유로 나는 작아졌다.
사랑에 갇혀있을 땐 그랬다.
실컷 노력해놓고 노력하지 않는 너에게 절절 맸다.
내 노력이 잘못된 것처럼 말하는 네 앞에서 늘 죄인이었다.
“막상 헤어지면 걔가 너보다 잘 살걸.”
“어?”
네가 없는 세상은 그대로 절벽일 줄 알았고, 그래서 못 놨었다.
“생각보다 괜찮아. 그냥 솔직하게 안 좋아한다고 해.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그게 나아.”
'너랑 아무 것도 같이 하고 싶지 않아.'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하는 수 없이 너를 놓았을 때,
비로소 난 살았다.
노력과 자책을 그만둘 수 있는 것만으로 지옥이 끝났다.
나는 그게 끝이었다.
너는 사라졌고, 그래서 숨 쉴 수 있었다.
세 달 만에 네게 연락이 왔지만 받지 않았다.
나는 그게 끝이었으니까.
“후회하진 않을지 생각해보고, 진짜 아니다 싶으면 얘기해.”
친구는 이틀 후에 이별을 선언했고,
괜찮은 듯 싶더니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그립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헤어지면 죽을 것 같은 마음을 놓고 세상을 마주보니 그랬다.
절벽인 줄 알았던 장애물은 고작 문턱이었고,
깊숙한 바다 어딘가에 잠겨있는 줄 알았더니 얕은 물가에 비친 하늘이었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 라고 했던가.
나만 노력한 연애가 남긴 건 상처뿐인 줄 알았으나, 그 또한 아니었다.
되레 나를 가치있는 사람으로 여길 줄 아는 용기를 주었고,
더는 '나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과감한 다짐도 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한다.
힘들기만 했던 사랑 아닌 사랑은,
훗날 더 좋은 사람을 알아보기 위한, 지나가는 바람은 아니었을까.
깊지 않았으나 깊다고 착각했던, 아주 조그마한 생채기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