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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영 Aug 28. 2018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SNS?

SNS를 버리고 떠났던 그때

             

스마트폰이 없던 세대에도 사람들은 살았다. 그땐 문자가 언제 도착했는지, 연락을 바로 받지 않더라도 전혀 문제 될 것 없이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왔다. 이제는 몇 시간 내로 답장하지 않는 이들을 답답해하고, 문자의 ‘1’ 자가 사라지고 답을 하지 않는 일명 ‘읽씹’을 분노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정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나아진 시민의식 같은 순기능만 기대했으나 내 생각엔 역기능이 더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읽히는 글을 선호하는 대신 긴 글은 읽기 싫어하고, 정확한 정보를 찾아보기보단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냄비처럼 들끓었다가 식곤 하니까.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발 빠른 언론사가(그게 확인된 내용이든 아니든) 정보 전달을 하지 않았다면 겁내지 않았을 잘못한 누군가, 예전 같았으면 쉽게 묻혔을 이야기들이 지속적으로 수면 위에 떠올라 있는 이야기들을 보면 그렇다.  

    

스마트폰 활성화는 사회적으로 동전의 양면성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땐 부정적인 면모가 더욱 부각된다. 

스마트폰과 함께 활성화된 SNS때문이다. 

SNS를 하는 사람이 SNS를 안 하는 사람에 비해 행복지수가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SNS로 우리는 모든 삶을 공개할 순 없다. 

고로 삶의 단면만 보여주는 셈인데 보이는 면은 대부분 자랑거리에 속할만한 것들이다. 일상 같지만 교묘하게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순간들을 나열한다. 스스로 자랑만 하면 다행인데, 남의 자랑까지 마음 쓰기 시작하면 그게 문제다. 남의 자랑거리 앞에선 대개 질투가 앞서니까.   


“이 사람은 또 해외여행 갔네!”

“이 사람은 매일 비싼 것만 먹나?” 

“이 사람 연애는 행복해 보여.”

“저 사람은 가족들이랑 사이가 좋나 봐.” 


인생에 부러워할만한 상황들을 보며 ‘나의 비공개 인생’과 비교한다. 비교의 끝은 결국 자책으로 끝나기 때문에 남의 행복한 ‘순간’을 내 ‘인생 자체’와 비교하는 건 결국 캄캄한 우물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바로 SNS를 하지 않는 것.


남을 염탐하고 싶진 않은데. 안 보자니 남들은 뭐하고 사는지 궁금하고, 지켜보자니 내가 작아지는 것 같아서 싫다면 SNS를 잠시 삭제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한 때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의 투데이나 좋아요 수에, 그러니까 ‘관심 수치’에 일일이 반응하는 내가 피곤해서 모든 사이트 계정을 삭제해버린 적이 있다. 당시 난 인간관계에 상당히 지쳐있었고, 지친 상태에서 바라보는 ‘관심 수치’는 한없이 크게 느껴져, 고작 하트 버튼 하나가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좀 극단적이긴 했지만, 블로그도 인스타그램도 심지어 핸드폰 번호까지 바꾸고 난 철저히 혼자가 될 수 있는 제주도로 돌연 떠났다. 주변 사람들에겐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만 남긴 채.      


그렇게 지인 한 명 없는 제주도로 떠난 몇 개월. SNS가 없으니 혼자 곳곳을 걸어다니며 사색하는 시간이 잦아졌고, 생전 몰랐던 사람들과 새로운 친분을 쌓고 나서야 난 비로소 ‘아무것도 없이’ 행복해졌다. 고작 숫자 하나, 버튼 하나에 마음 쓰던 나는 사라졌다. SNS를 하지 않는 순간 내 인간관계는 전부 어디론가 멀어지는 줄로만 알았는데, 돌아왔을 때 여전한 사람들을 보며 그토록 잡고 있던 게 사실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에 허무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다시 SNS를 시작했을 때 난 겨우 남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기서 반전은그 마음 역시 영원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도시 생활을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니, 내 마음은 다시 예전처럼 ‘수치’를 신경 쓰기 시작했으나 그래도 한 가지 사실은 깨달았다. 마음의 수양이란 건 단 한 번의 깨달음으로 평화로워지지 않으며결국 연연하지 않으려는 노력그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 질투가 발전으로만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질투가 비교에서 자책으로 끝난다면 그 질투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는 것도 말이다. 


 

남을 염탐하고 싶지 않다면, 그전에 '비교하지 않는 내'가 있어야 한다. 

그게 자신이 없는 시기라면, SNS는 잠시 접어두는 건 어떨까?

지속적인 마음의 수양은 분명 우리를 의연하게 바꿔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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