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취(無臭)
가장 좋아하는 향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을 때 난 여전히 ‘여름 밤 냄새’라고 했다. 몇 분 후 뜬금없이 ‘눈 내린 겨울 거리 냄새’도 만만찮게 좋다고 했다.
몇 분, 그 동안 넌 말이 없었다. 계절의 냄새를 영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계절의 냄새는 분명하게 존재했다.
봄에는 견딜 수 없는 상큼함, 색깔로 치자면 연분홍빛(벚꽃 때문이 아니다)의 향이 분분하게 흩어져있었고, 여름엔 낮엔 햇볕의 향기가 노랗게, 밤엔 덜 마른 볕의 냄새가 시퍼렇게 밤공기 사이에 스며있었다. 가을엔 축축한 흙냄새가 낙엽 사이에 적적하게 배어 있고, 겨울엔 도시 위에 묵직하게 눌러앉은 눈이 평온한 향기를 품고 있다고 말했다.
한참 후 돌아온 대답은 “까다롭다”였다. 잠시 생각하다가 ‘피곤한 사람’이란 뜻이냐고 물었더니, 매사에 왜 그렇게 꼬여있냐며 버럭 화를 냈다. 너도 일전에는 “냄새는 잘 모르지만 여름 밤 공기가 좋다.”고 했었는데.
완벽하진 않아도 얕게나마 이해했었으니, 대답이 변한 건 네 쪽이었다.
나는 사랑하는만큼 조금 더 섬세해졌을 뿐인데.
변함없는 계절 속에서 네 향기만 부슬부슬 흩어진다.
무취(無臭)구나. 아, 끝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