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남영 Aug 11. 2018

왜 점점 사랑이 힘들까?

‘내’가 사라져도, 사랑이면 괜찮다.


어린 나는 아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았을 당시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은 연애초반에 ‘나를 잃어버리는 과정’을 인지조차 못한 채 모든 걸 쏟아 붓는다. 그게 ‘모든 것’인지도 모른 채 집중하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확실한 ‘나’를 알고 있는 나는, 어느 시점부터 연애 초반에 오는 ‘잃어버리는 과정’을 잘 견디지 못했다. 나를 잃어버리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매력이 사라지는 것 같았고, 그 매력이 없으면 더는 그 사람이 곁에 있지 않을 거란 두려움에 ‘내’가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냅다 발을 빼는 것이다.     


드디어 깨닫게 된 사실 하나는, 내가 생각하는 ‘매력’은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 중 일부일 뿐이었으며, 상대가 좋아져서 변해가는 나의 모습은 ‘사라진 매력(그것 역시 내가 생각하는)’과는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매력이 사라진(사라졌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나는 ‘을의 입장’에 자처해서 선다. 그때부턴 가관이다. 

을이 되는 순간 조급해지고, 불안에 초점을 맞춘 연애가 시작된다. 사랑받는 열 가지의 행동보다 사랑하지 않는 듯한 한 가지의 행동에 집착하며 늘 떠나보낼 만반의 준비를 마쳐 놓는다. ‘더 좋아하는 쪽이 진다’라든지, ‘밀당을 해야 그 관계가 오래 간다’와 같은 보편적인 사례들만 골라 듣고, 보편적인데는 이유가 있다며 ‘이 연애는 잘못되었다.’라는 생각까지 미치는 것이다.     



영화 <Eat.Pray.Love (2010)>에서는 말한다.

 “때로는 사랑 때문에 균형을 잃는 것도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에요.”라고.



내 삶의 균형의 중심은 나다. ‘내’가 사라져도 그게 사랑이라면 괜찮다. 그런다고 내가 ‘지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고 있는 내 (변한)모습을 애인이 싫어한다 한들, 그런다고 내 가치가 작아지는 게 아니다. 


어쩌면 사랑은, 타인과 맺는 관계보다 좀 더 끈끈한 인간관계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상의 불균형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 불균형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사랑의 유지기간이 결정 나는 것이다.     


사랑은 늘 그 어떤 감정보다 어렵고, 누구에게도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절의 냄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