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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애 그 축축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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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남영 Aug 11. 2018

의식의 침범(侵犯)

선생님 저는요, 진짜 모르겠어요. 이거, 정상 맞죠?

선생님 저는요 진짜로 모르겠어요. 사랑하면 원래 그렇게 자주 다퉈요? 누구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줬으면 싶은 애인데, 누구보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서운해요. 아니, 그 애라서 더 서운하게 느끼는 걸까요? 친구한테 이깟 일로 화가 나진 않잖아요. 이유요? 내가 생각해도 쫌생이 같아서 말하기도 민망한 이유들로 싸워요. 웃기죠. 처음엔 사소한 배려에 초점을 맞추고 ‘나를 사랑하는 구나.’싶었는데, 이젠 무심한 행동 하나에 집중하면서 ‘나를 사랑하지 않나?’하는 불안감 때문에 서운해지는 것 같아요. 음 근데 또, 그 애가 변했나 싶다가도 내 사랑이 함께 커져서 상대적으로 불충분하게 느끼는 걸까 싶기도 하고. 아, 정말 모르겠어요. 어느 날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이해하다가도 어느 날은 다신 꼴 보기 싫을 정도로 싫어지니까요. 얼굴만 보면 배시시 웃어버릴거면서 또 그렇게 민망한 이유로 다투곤 해요.

선생님 근데요. 잘은 모르지만, 아직도 사랑은 어렵지만, 사랑은 ‘의식의 침범’같아요. 아름다우면서도 폭력적이잖아요. 타인을 받아들이고, 또 끼워 맞추니까요. 아, 사랑하면 그래서 닮는 거예요? 머릿속에 그 애가 잔뜩 끼어있어요.

그 애는 뇌 속에 공기처럼 늘 떠 있다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를 잡아먹어요. 나는 그게 겁이 나면서도 ‘나를 잃는다.’라는 두려움보단 ‘이건 그 애가 할 법한 행동인데.’라며 웃음을 터트리는 거 있죠. 정말 웃기죠. 그 애를 만나지 않았다면 결코 변하지 않았을 내 가치관이 자꾸 그 애로 물드는 거예요. 그 앨 만나기 전엔, 전 분명 개방적인 사람이었거든요. 흔히들 말하는 쿨한 사람. 저는 그게 자랑이었거든요. 근데 제 자랑거리를 그 애는 단점으로 보는 거예요. 가벼워 보인다면서요. 억울했어요.

선생님 저는요, 여전히 개방적인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애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만한 ‘쿨한 행동’이나 ‘쿨한 말’같은 게 나오려고만 하면 자꾸 브레이크가 걸리는 거예요. 신기했어요. 여전히 개방적인 건 나쁜 게 아닌데, 그 애가 싫어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소한 언행 하나하나 조심스러워 진거예요. 정말 웃기지 않아요?

아, 근데 이게 한 가지 부작용이 있어요. 살아온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날이 가아-끔 찾아와요. 나는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일상들이 와르르 무너지니까 ‘지나온 과거에 나는 잘못 살았나.’하게 되는 거죠. 그 애의 말이 다 맞는 것 같으니까요. 근데 이제 그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어요. ‘과거의 나’도 나름대로 잘 살아왔고, 그 애의 영향을 받아 ‘바뀌는 나’도 제법 마음에 들거든요.

음 근데요 선생님,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 원래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다 맞는 거죠? 저는 자꾸만 그렇게 느끼거든요.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부작용을 견딜 만큼 그 애의 말을 맹신하게 되거든요.

선생님 저는요. 진짜 모르겠어요.

이거, 정상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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