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남영 Aug 11. 2018

그리움의 다른 이름

지나고서야 깨닫는 것들


추억이란 상관관계도 없이 문득 떠오르기보단 장소나 노래, 대화, 작은 행위에서 비롯되는 매개체를 동반한다. 


오늘은 비가 왔고, 함께하던 카페에 앉았고, 자주 앉던 자리가 정면에 놓였고, 네가 좋아하던 노래가 흘렀다. 

너를 그리워하도록 누군가 설계한 것처럼, 떠올리기 딱 좋은 상황에 알맞게 들어앉은 것이다.


낯설어진 카페 끄트머리에 앉아 애꿎은 빗방울을 세었다. 너를 피하기 위한 행위였으나 결국 ‘비-너’로 직결되는 참담한 결과를 맞이했다. 잘 설계된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이곳을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너는 비를 싫어했고, 나는 비를 사랑했다. 넌 더위와 습기와 장마철 같은 여름에 찾아오는 모든 것을 싫어했고, 나는 추위나 쌓인 눈, 빙판길 같은 겨울에 찾아오는 모든 것을 싫어했다. 딱히 여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날 난 같은 계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토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일종의 테스트였던 것 같다. 너와 상반되는 모든 걸 사랑하는 나까지 사랑할 수 있을지, 너와 반대되는 날 어디까지 감싸 안을 수 있을지 하는 순간만 의미를 갖는, 의미 없는 테스트. 사랑하는 사이의 ‘확인’은 만족할 때까지 물어선 안 되는 거란 걸(만족이 없으므로) 그땐 어려서 알지 못했다.


 ‘확인’과 ‘믿음’이 반비례라는 사실도, 확인이 잦아질수록 신뢰가 바닥난다는 사실조차. 나는 알지 못했다. 무지했던 나는 잦은 확인으로 너와의 관계를 무르게 만들었고, 연해져 버린 사이는 결국 작은 충격에 소리도 없이 부서진 것이다.


아, 이제는 너와의 추억을 ‘반성’쯤으로 불러야겠다. 

네 추억만은 유독 반성으로 끝나니 말이다. 반성은 후회를 남기고, 후회는 미련을, 미련은 그리움을 만든다. 인제 보니 모두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었다. 추억도, 반성도, 후회도, 미련도, 결국 다 그리움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자주 가던 자리를 등지고 카페를 나와, 노래에서 멀어지고, 빗줄기를 우산으로 막는다. 네가 모두 사라진 빗속에 덩그러니 서서 잠시 안도하다가, 여전히 이렇게밖에 피할 수 없는 내 마음이 가여워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