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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영 Sep 08. 2018

사랑이라면, 그 이유야 무엇이든 말이 되니까.

홀로 기차 여행하며 떠오르는 생각


나는 혼자 여행을 즐긴다. 

혼자 기차에 몸을 싣고 앉아 속도가 붙은 창밖의 풍경을 보며 사색하는 그 시간이 좋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나를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여정을 떠나는 기분. 그 기분 때문에 나는 목적지까지 최대한 느리게 가는, 여정이 길고 긴 기차에 몸을 싣는다. 


여행 중 튀어 오르는 글자들을 공책에 옮겨 적는 일은 내게 즐거움이다. 영감이라면 기차 안의 소음, 낯선 풍경들이 도움이 된다. 지나가는 풍경들은 자신들을 피사체 삼아, 무엇이든 옮겨 적길 바라는 눈치니까. 자연과 어울릴 법한 단어들을 몇 자 나열하고, 아직 문장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단어들을 덜 맞춰진 퍼즐 조각처럼 백지 위에 제각각 뿌려놓고 다시 조합하길 반복하는 그 과정이 참 재밌다. 



여행 중 특히 기차 위에서 태어난 글자들을 사랑한다. 바다 위에서 태어난 글자들도 응당 사랑하지만, 바다는 누구나 존재 자체를 아름답게 여기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 역시 바다가 푸르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란 생각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아름다운 쪽' 보다는 '덜 사랑받는 쪽'에 애착이 가는 탓이다. 아, 또 목적지에서 태어난다거나 과정 중 태어난다는 애정의 차이도 있다.(결과보다 과정을 사랑하는 탓에)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들이 기차 위의 글자들을 사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결국 사랑에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많은 이유들이 기차 위의 글자를 더 사랑하도록 향하고 있으나, 내가 바다 위의 글자들을 더 사랑했다면 바람따라 흔들리는 나약함을 애처롭게 여기거나, 밀려들고 떠나가는 이치 따위들을 사랑한다 했겠지. 사랑에는 이유가 없고, 사랑을 따라다니는 이유들은 결국 사랑이 사라지면 함께 지워질 조무래기 들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사방에서 태어나는 글자를 사랑하고, 

그 사랑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테니 

나의 사랑을 뒷받침할만한 그럴듯한 이유만 앞으로 더 늘어가겠지. 


사랑이라면, 그 이유야 무엇이든 말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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