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넌 어떡할 건데?
“이번에도 틀렸어. 애인과 헤어질 거야.
그 사람은 나에게 믿음을 주지 않았어.
사랑하는 사이에 믿음이라는 거, 참 아이러니 하지.
나를 가장 믿어줬으면 하는 사람과,
내가 가장 믿고 싶은 사람이 만나는데
서로가 서로를 믿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왜 이 사랑엔 작은 배신도 용납되지 않는 걸까.
가장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사이인데, 단단한가 싶다가도 너무 쉽게 흔들리잖아.”
“믿음을 ‘줘야’ 믿는 거야? 그냥 믿는 거 아니야?”
“믿음엔 시간이 필요해. 처음부터 믿을 순 없지.
신뢰엔 적어도 어느 정도의 세월은 쌓여야 하잖아.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충분히 관찰하고, 그 뒤에 믿을지 말지 판단하는 게 현명한 거지.
아직 알아가는 시기였는데, 그 사람에게 실망했어.”
“아냐. 어쩌면 넌 그 사람을 이미 믿고 있었는지도 몰라.
‘믿음을 주지 않아서’ 서운해한다는 게.
사실 ‘서운함’이 믿음의 증거잖아.
믿으니까 실망도 하고, 서운도 한 거지.
신뢰에서 ‘기대’도 비롯되는 거잖아.”
“글쎄. 그 기대감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에서 오는 ‘기대’인 것 같은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있잖아.”
“그래? 애초에 신뢰를 쌓지 못하고 시작한 사이라면, 난 다시 생각해봐야 맞는 것 같아.
물론 경계심까지 나쁘다는 말은 아닌데… 믿음이란 건, 자고로 ‘이유’가 없어야지.
무언가를 충분히 눈으로 확인한 다음, 믿는 게 믿음일까?
증명된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확신’ 아닐까?”
“들어봐. 한 예로 어떤 오해할만한 상황…, 그래.
뜬금없이 애인과 이성이 단 둘이 앉아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생각해보자.
딱 오해하기 좋은 상황이지.
그럴 때, 한 달 된 연인과 일 년된 연인의 대처가 과연 같을까?
그건 결국 신뢰는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지.”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네.
그런데 믿음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그들이 진짜 사랑을 한다고 말할 수 있나?
그건 겉치레인 사랑 아니야?”
“그렇다 해도 뭐가 먼저인 지 알 순 없겠다.
시간이 흘러서 사랑이 깊어진 뒤 신뢰가 쌓이는 건지,
신뢰가 쌓여서 사랑이 깊어지는 건지.
결국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문제잖아.”
“이건 흑과 백으로 나뉠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예를 들어 처음엔 20% 만큼 믿었다면, 시간이 지나 100% 만큼 믿을 수 있는 거지.
믿음을 바탕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맞고,
신뢰가 쌓여 사랑이 깊어지는 것도 맞는 거야.
결국 ‘얼마냐 믿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그래. 맹목적인 믿음도 필요하고, 쌓아가는 믿음도 필요하겠다.
‘얼마나 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냐’가 어쩌면 믿음의 척도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넌 어떡할 건데? 믿을 거야, 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