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약속해!
엄마는 지금 너를 기다리고 있어.
엄마랑 처음 떨어져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하룻밤 자고 나올 너를 기다리는데, 오래전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네가 아기였을 때, 엄마는 잠든 네 곁을 쉽게 떠나지를 못했어. 떠났다가도 금방 돌아와 다시 네 숨소리를 듣곤 했어. 내가 안 보는 동안 네가 어떻게 될까 겁이 났거든. 웃기지? 네가 좋아했던 까꿍 놀이 기억나니? 안 보이던 엄마가 까꿍 나타나면 너는 좋아서 까르르 웃었잖아. 나도 좋아서 까르르 웃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조금씩 알아 가고 있었던 거야. 잠깐 서로 못 본다 하더라도 아무 일 없이 꼭 다시 만난다는 걸.
하지만 엄마가 잠깐만 안 보여도 네가 불안해할 때가 있었어.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을 두드리며 울고, 내가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 와도 문 앞에서 목 놓아 울었지. 하지만 너는 곧 깨달았어. 엄마가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금방 너에게 돌아온다는 걸 말이야. 그런 네가 자라 어느새 유치원에 가게 되었어. 첫째, 둘째 날은 씩씩하게 유치원 버스에 올라타던 네가 셋째 날부터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썼어. 버스 앞에서 엄마 옷을 붙잡고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지. 다시는 엄마를 못 볼 것처럼 말이야.
이제는 아니야. 너는 확실히 알게 된 거야. 아무리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난다는 걸.
그런데 참 이상하지? 네가 유치원 버스를 타고 캠프를 떠난 날, 엄마 마음이 얼마나 허전했는지 몰라. 얼마나 네가 보고 싶었는지 몰라. 혹시나 너도 엄마가 보고 싶어서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어. 하지만 엄마는 알아. 너는 엄마가 보고 싶어도 꾹 참고 씩씩하게 보냈을 거야. 그래서 엄마도 네가 보고 싶은 걸 꾹 참고 씩씩하게 하루를 보냈단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났지.
서로를 꼭 껴안았지.
네가 더 멀리 떠나고 엄마는 집에 남아 있을 날이 오겠지? 그래서 아주아주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날도 오겠지? 그래도 괜찮아. 너는 엄마가 보고 싶어도 꾹 참고 재미나게 세상을 누빌 테고, 엄마는 네가 보고 싶어도 꾹 참고 재미나게 하루하루 지낼 테니까. 아주 오랫동안 서로 보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 우리는... 꼭 다시 만날 테니까.
사랑하는 아이야,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렴. 날다가 힘들어 쉬고 싶을 때 언제든 돌아오렴.
엄마가 꼭 안아줄게.
페이지를 넘길수록 자꾸만 아이들의 모습이 기억에서 스치며 차오르는 눈물을 울컥하는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읽어냈다. 엄마의 눈물이 세상에서 제일 슬프다고 말하는 아들아이가 보면 걱정을 할 것 같아서였다.
낮잠이 든 아들아이가 깰까 봐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고 골목길을 나섰다. 딸아이의 하원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유치원 버스가 보일 때쯤 엄마 하며 우는 아이의 자지러진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오더니 나는 뒤를 돌아보고는 기겁하고야 말았다.
다섯 살의 아들아이는 5분 거리에 있는 길목까지 눈물에 콧물 범벅인 채로 뛰어와 내 품에 안겼다.
딸아이의 등 하원 길을 늘 함께 다녔기에 길을 용케도 기억을 하고 있었구나 싶으면서도 누가 데려갔으면 어찌했을까 싶어 그날은 생각만 해도 여전히 어질어질하다.
매일같이 내 품에서 꼬옥 안겨 자던 여덟 살 아이가 두 살 터울의 사촌동생과 함께 자겠다며 고모 집에 있겠다고 하던 날
"준이는 엄마 없이 잘 수 있겠어?
엄마는 준이 없이는 못 자는데 어떡하지?"
엄마 하룻밤만 참으세요.
그렇게 처음으로 떨어져 자던 날 밤 난 또 아들아이가 보고 싶어 하염없이 울며 밤을 지새웠고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수련회를 가며 떨어져 지냈던 2박 3일은 또 왜 그리도 시간이 안 가던지. 이제나저제나 휴대폰만 바라보며 혹시 쉬는 시간에 엄마 보고 싶다고 문자라도 보낼까 봐 하루 온종일을 딸아이를 생각하며 그림 그리며 보냈던 날도 있다.
사회자가 누구 해볼 사람 하면 제일 먼저 손을 들며 나서기를 좋아했던 딸아이의 재롱에 참 많이 웃고 대견해서 윤이는 커서 뭐가 될 거야? 하고 물으면 그때마다 달랐던 대답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고 말하는 딸아이 보며 그럼 엄마 옆에서 오래오래 있어. 맛있는 밥 해줄게라고 했다.
아이들의 스무 살을 점쳐 본다.
떨어져 있어서 세상 시원하겠다 싶으면서도 아무리 유머러스한 남편일지라도 둘이 보내느니 밥 해주고 빨래해주며 아이들과 복닥거리며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건 오늘만 드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