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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잘하면 된다는 말이 제일 어려워요

[밝은 밤 - 최은영]을 읽고






"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본문 중에서




희령 천문대의 연구원 채용공고에서 합격 소식을 듣고 나는 부리나케 서울을 떠났다. 한 달 전 이혼을 하고 난 후였기에 그 어떠한 미련도 없었다. 바람을 피운 건 남편인데 오히려 그렇게 몰아세운 것도 나였다며 엄마 아빠까지 되려 나를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이십여 년 만에 할머니를 마주했고 나와 가장 많이 닮았다는 증조할머니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나는 할머니에서 나의 엄마, 나로 이어지며 치유되어 가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증조모가 할머니 영옥을 낳고부터 증조부는 서서히 참아왔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했다.

양민이었던 자신은 모든 걸 포기하고 백정의 딸을 받아줬건만 돌아온 건 처음부터 양민이었던 양 살갑지 않은 증조모의 태도가 못내 못마땅했으며 더욱이 아들만 치대 받던 시절 딸을 낳았기에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고 자란 할머니는 증조부의 사랑을 애달아하면서도 내색을 할 수 없었고 새비 아주머니의 딸 희자와 가끔 어울리며 외로움을 달랬는데 그 마저도 피난길로 떠나 버리자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스무 살에 후딱 치러진 자신의 혼례와 또다시 사랑받지 못할 딸 미선을 낳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던 내내 할머니는 나의 병실을 지켰다. 엄마와 단둘이 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웠기에 오히려 할머니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퇴원하기로 하던 날.

엄마는 나의 거절을 무시한 채 병원으로 들어섰고, 그만 가보겠다며 나서는 할머니와 둘은 입구에서 마주했다. 어떤 연유에서 비롯되어 소원해진지 이십 년만의 만남은 서먹한 듯 바라보다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으며 헤어지는 말미엔 손을 흔들며 웃음을 보였다.

오랜 세월 연락을 끊었던 모녀 사이 같지 않게 할머니와 엄마의 다정한 모습처럼 우린 연출되지 않았고 엄마와 나 사이의 불편한 간극은 쉬이 좁혀지지 않은 채 또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말싸움에 들었다. 언제나 내가 문제라는 질타로 시작되어 일방적인 나의 울분으로 끝나고 마는.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돌아섰다. 그건 폭로보다는 자신이 다칠까 봐 더 내면을 꼭 닫고 지낼 수밖에 없었던 엄마 미선의 어린 시절 때문이었다. 미선은 죽은 줄만 알았던 처자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북으로 떠나버린 호적에만 존재하는 아버지를 잊고 지내야 했고 오로지 엄마 손에서 자라며 보호할 수 없는 아이들만 골라 괴롭히던 선생님에게 멸시를 당하고 혼자 감내하며 버텨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희령을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찾은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엄마가 내 이혼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건 평범한 가정을 꿈꾸었기에 순탄치 않은 아빠와의 결혼생활에서도 참고 살았으며 그걸 나에게도 바라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엄마와 벌어졌던 틈을 찬찬히 메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엄마를, 엄마는 나를 용서했다.

우린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사진첩을 정리하며 한바탕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현실의 나와 100년 전의 일을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건 할머니였어요. 디테일하게 묘사되는 감정 표현이 책을 쉬이 놓지 못하게 하는 이끌림이 너무 좋더라고요.

할머니에서 나로, 나로부터 할머니에게로 이야기는 옮겨지며 사이사이 벌어져 있던 모녀 관계의 틈을 서서히 메워나가면서 화해의 발판이 되어주었죠.

결국은 엄마도 어린 시절의 미선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참고 살았으며 그 원망의 대상이 할머니에게로 향하면서 절연 상태로 몰고 갔던 겁니다. 그 대물림이 되지 않기 위해 주인공 지연이에게도 모진 말을 쏟아내 가며 가정을 유지하기를 바랐던 것 같고요.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렇게 상처와 사랑을 반복하며 또 연대해 가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해요. 돌고 돌아 이야기의 주인공은 할머니의 삶과 묘하게 닮았다는 걸 인지합니다.


"언젠가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야.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그럴 거야."


그렇게 또 위로를 받으면서요.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또 나름의 방식을 찾아 그렇게 사는 것처럼요. 그런데 생각이 많이 담긴 감정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 오늘입니다.

마음이라는 몸속 장기라는 말을 다시 언급해 보며 마음 없이 지내고 싶어 지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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