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할머님은 76세에 알츠하이머 진다을 받기 전까지 손자며느리인 나를 많이 예뻐하셨다. 하지만 그 예쁨은 건강이 악화되실 수록 나를 그만큼 더 힘들게 하시기도 했던 원인이기도 했다. 내가 돌봐 드려야 할 당연시되는 대상에서 심신이 많이 지쳐 있던 나의 둘째 출산 직후에 맞닥뜨려야 했던 변화된 할머님의 일상을 감당해 내기란 쉽지 않았다. 당신에게 손자 며느리의 존재는 몇 년을 함께 해온 시부모님과 손주들과는 또 다른 감정으로 당신을 유일하게 위로해주는 착한 아이로 마음에 새기시며 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유독 알츠하이머 증상을 심하게 보이시는 할머님이 그러실 수도 있지 했던 마음이었지만 할머님의 행동이 점점 거칠어지실수록 나와 시댁식구들은 한계에 다다랐고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요양원에서 홀로 임종을 맞이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제일 힘드셨을 때 함께 해드리지 못해 드렸다는 죄책감에 펑펑 울었다. 지금도 일상생활 속에서 문득 문득 할머님이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시야가 뿌해진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사연 신청자는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살아계실 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에 괴롭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일상생활 하는데 힘들다며 어떡하면 마음이 편해질까요? 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법륜스님은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본인이 바쁘다면서 안 찾아뵀던 것도 개인 위주였고 돌아가셔서도 자신이 아버지가 보고싶다며 괴로워하면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해 드렸던 죄책감이 덮어지는 것도 아닌 데 아드님은 지극히도 자신만 생각하는개인주의자라고 하셨다. 생전에 잘 못했다며 돌아가셨을 때 후회스러운 마음은 들 수 있지만 자신이 괴로워 하는 모습을 마주할 주위에 다른 사람은 생각지도 않느냐면서. 못해 드려서 죄송하다고 돌아가신 분이 보고 싶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살아 계신 다른 가족분들이나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를 한 번 더 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번 더 하라고 조언하셨다.
예전엔 조금만 아파도 내가 없으면 우리 아이들은 누가 챙겨 주나 싶은 걱정이 앞서서 죽음이란 단어에 불안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딱히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다. 누구나 겪에 되는 것임을 인지하기 까지는
자의에 의해서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려서 건 그것이 운명이었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을 탄탄히 키워내고 있는 나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일이 올지 안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늘만 잘 살아내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