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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000원의 가치도 안 되는 사람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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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어 번 만나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밥을 사면 친구는 커피를 샀고 친구가 밥을 사면 내가 커피값을 치렀다. 그래도 그나마 내가 형편이 좀 낫지라는 생각에 밥값을 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한날 친구는 맛있는 백반 정식집을 알아냈다며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맛있게 식사를 끝내고 화장실을 잠시 다녀온 사이 친구는 계산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네가 살 차례잖아?라는 의미로 계산서를 내게 내민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괜히 찜찜하다.

'와~6,000원이라는 밥값이 계산하기 아까워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아니 비싼 밥값은 그동안 내가 더 많이 냈는데?'

'내가 오늘 아이 간식도 만들어다 줬는데?'


밥집을 나와 커피 한잔 하러 가는 길에 친구는 계속 무어라 말을 했지만 별로 듣고 싶지도 않았고 들려오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엔 오로지 6,000원의 밥값만 머무르고 있다.


퇴근하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얘기했다.

"그래도 00 엄마가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00 엄마는 6,000원이 아까운 것도 아니고 네가 싫어서도 아니고 단지 그렇게 살아와 몸에 밴 소비 습관 때문인 거야. 00 엄마도 이번엔 누가 밥값 낼 차례라고 일일이 기억해 가면서 살고 싶지 않겠지. 근데 어떡해. 00 엄마가 그렇게 넉넉한 살림이 아니니 나름의 알뜰함으로 계획 있게 돈을 썼는데 다른 사람에겐 밉보일지 몰라도 너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라고 한다.

남편의 이야기에 바로 수긍이 되질 않아 찬찬히 곱씹어 본다. 아이 하나를 데리고 재혼한 친구. 도박을 일삼는 데다 벌이가 시원찮은 남편에 데려온 아이 때문에 늘 시댁의 눈치를 봐야 하고 것도 모자라 아랫동서에게까지 무시당하며 사는 처지가 얼마나 고될까 싶다. 그러면서도 둘째를 잘 키워 보겠다며 생활비를 쪼개어 학원을 보내고 자신은 5천 원짜리 티셔츠 하나에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어쩜 어렵사리 마음에 스며들었을 달관한 세월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니 그녀를 힐난하게 비판했던 내가 오히려 초라해진다. 친구의 살아온 세월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내가 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음을.


지금은 그 친구를 만나지 않고 있다.

딱히 그 일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이런저런 일 따져가며 계산하고 있는 나 자신의 간사함이 정답일 수 있겠다.

가끔 친구들의 안부가 그립긴 하지만 그냥 내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다음에 연락하고 싶다.

그때라도 '이제 네 마음은 편안해졌어?'라고 나를 평소와 같이 환하게 받아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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