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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천년의 질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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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급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거든요. 고향 사람인 윤 의원이 그전부터 글을 써달라고 해왔었거든요. 거 국회위원들, 합법적으로 정치자금 모으는 책 내는데 쓰려고요. 그치만 단호하게 거절해 왔었지요. 아내가 벌었으니까요. 근데 아내가 업자가 되니까 당장 그다음 날부터 생활에 구멍이 뻥 뚫리기 시작한 거예요. 내 경제력이 그렇게 허약했던 거예요. 우리 몸이 하루 세끼 굶으면 금방 맥을 못 쓰고 빌빌거리게 되는 것처럼. 그 초라하고 한심한 내 경제력 앞에 두 아이가 공포스럽게 서 있었어요. 귀엽고 예쁘던 두 애가 공포로 느껴진 건 처음이었어요.


-본문 중에서




늘 뉴스에서 접했던 기사들을 더 세세히 더 깊이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마치 가려운 곳이 어딘지 알지만 손으로는 어디를 긁어도 시원하지 않던 등줄기에서 느끼던 불편함을 효자손으로 구석구석 밀어 주니 '아 이제야 좀 시원하네'라는 말을 언급할 수 있는 것처럼.

평범했던 서울대생이 재벌가의 사위로 들어갔다가 처남 둘을 대신해 감옥살이까지 했지만 결국엔 양국권도 갖지 못한 채 배신자로 찍혀 쫓겨나야 하는 현실. 지체장애인을 상대로 성폭행에 낙태까지 강요했음에도 취중이었다는 회사 대표의 진술에 무혐의 처분. 각종 사건 사고에 검찰들의 개연성과 유착관계는 전관예우를 따져가며 선배 변호사들의 사건에 무조건 져드려야 한다는 관습 때문이었고 대기업의 비자금이 세상에 알려 질까 언론과 기자들의 지인까지 입막음시키는데 몇백억 때쯤은 그리 큰돈이 아니라는 것. 돈만 있으면 너무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필로폰. 국민 세금으로 출장을 빙자한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다니는 국회의원 등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익히 알고는 있지만 애써 부정할 길이 없어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한 나라의 반장을 누가 맡기 전까지만 반짝하는 선거공약들이며 앞에서는 국민들은 자신들의 주인이라며 노예 행세를 하는 간파적인 시나리오가 매 선거 기간 똑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나라라고 생각하니 나도 조금씩 나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OECD 국가들 중에서 대한민국이 출산율 최저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는 건 벌이는 시원찮고 돈 모으기는 어렵고, 내 집 장만 막막하고, 맞벌이에 애 키워줄 사람 없고, 아동 학대하는 어린이집은 수두룩하고, 사교육비 무한정 들어가고, 입시 경쟁 살인적이고, 청년 실업 갈수록 심해지니 애를 낳는 게 비정상적이라고 말씀하시는 작가의 목소리에 크게 공감한다.

열심히 공부하지만 학원도 안 다니는 애라고 친구에게 놀림당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잘 차려진 간식을 보며 허겁지겁 입으로 욱여넣던 아이는 돼지라고 손가락질당해도 마냥 해맑게 웃어 보인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도 없고 자신이 선택해서 태어난 세상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부모에 의해서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뉠 수밖에 없는 이 나라에서 혼자 험난함 삶을 이겨내야 하는 막막함이라곤 엿볼 수 없었다.


아 출발 선상이 다른 데 사회적 간극이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라고 국민을 개돼지라고 말하던 한 국회의원이 생각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당신도 우리나라의 한 국민이 아니겠는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라고 한다. 개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 당신과 같이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해 앞으로 당신들의 행동에 일일이 감시하겠다. 한 사람만이라도, 저 한 사람만이라도 똑바로 보고, 똑바로 쓰고, 똑바로 전하고 싶다던 거액의 돈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강직했던 장우진 기자님을 응원하면서 그리고 꼭 실존해 계시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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