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고래]를 읽고

삶과죽음





금복은 생각이 깊은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감정에 충실했으며 자신의 직관을 어리석을 만큼 턱없이 신뢰했다. 그녀는 고래의 이미지에 사로잡혔고 커피에 탐닉했으며 스크린 속에 거침없이 빠져들었고 사랑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녀에게 '적당히'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사랑은 불길처럼 타올라야 사랑이었고 증오는 얼음장보다 더 차가워야 비로소 증오였다. 그녀는 걱정의 배 위에 두려움 없이 얹어놓았던 그 손으로 칼자국의 배에는 거침없이 작살을 꽂아 넣었다.


-본문 중에서






황당하고 무모하지만 총명한 금복이의 파란 많았던 삶의 이야기다. 그녀는 좁은 산골마을을 떠나 부둣가에서 마주했던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대왕 고래에게 매료된다. 이렇게 고래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신선하게 시작되나 보다 했다. 하지만 잔잔하다가도 절묘하게 이어지는 기이한 표현들은 움찔하게 놀람을 주기도 했다. '어떻게 이 문장에서 이런 단어를 기막히게 갖다 붙인 거지?'라고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을 쏟아냈고 추리력이 생길 때쯤엔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어 스릴러물을 연상케하며 '으악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다 있어!'라고 머리채를 부여잡고 흔들고 싶을 만큼의 비현실적이고 황당무계한 이야기 같았다. 과거사 속 이야기를 쓴 소설 같다가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현대어라던가 굿을 하던 무당이 외래어로 하던 욕설들이 그러했다.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어 이제 끝이다 싶으면 또 다른 방식으로 똑같이 이어진다.


밤새 쏟아지던 엄청난 양의 비로 천장이 갈라지고 그 새로 마구 쏟아지는 지전과 땅문서. 금복은 돈벼락을 맞는다. 평대 다방, 평대 운수, 평대벽와라는 벽돌 공장과 고래의 모양을 본떠 극장을 짓고 승승장구하며 금복은 점차 여자에서 남자로 변해가다 끝내 죽음을 맞아 이야기가 끝나나 싶을 때 그녀의 딸이자 정신박야아인 춘희로 또 다른 스토리가 이어졌다. 그리곤 목숨줄도 참으로 길던 국밥집 노파와의 만남을 보고 이건 복수극이었다는 소설이다.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자꾸만 책을 놓고 싶었다. 반만이라도 읽어 보자 하며 한 장 한 장 넘겼던 것이 단숨에 책의 에필로그에 다다랐다. 고래가 주는 순박한 이미지에서 거대하게 확장되어 모두를 죽음으로 이끈 어둠속 괴물로 전락해버린 이야기. 단순히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엔 죽음보다 못했던 삶에 대해 무거운 여운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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