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살다 가자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서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본문 중에서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선윤재는 냉정하고 무미건조한 아이로 평가받는다. 그 이유는
생일인 크리스마스이브날 청계천 냉면집을 찾았다가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찌르던 한 남자의 손에 자신의 엄마와 할머니가 무참히 희생이 되는 걸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주변에 사람들은 왜 난동 부리는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는지에 생각을 두게 된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한 번도 깨어나지 않는 엄마의 병실을 매일같이 드나들던 윤재는 한 남자의 오래된 시선을 느낀다. 남자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자신의 아내를 위해 어린 시절 잃어버린 아들과 닮았다는 이유로 아들 역할을 해달라는 제안을 하고 윤재는 순순히 응해준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남자의 아내가 죽고 장례식장에서 진짜 아들 윤이수를 마주하게 되며 윤재의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둘 사이의 진정한 시작이, 시작됐다.
진짜 아들 이수는 곤이라 불리었고 곤이는 어린 날 부모를 잃고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다 보호시설에 보내져
소년원을 들락거렸던 이력답게 친부모를 찾았다는 기쁨보다 자신이 살아온 거친 날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로 전학 온 학교에서도 모든 아이들을 수시로 괴롭혔다. 그중에 자신의 역할을 대신 했다는 윤재를 지목해 욕설과 폭력을 일삼지만 시종일관 대응하지 않던 윤재였지만서도 가끔은 엄마의 친구였던 심 박사에게 자신이 어떠한 상황이고 이럴 땐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묻고 해답을 찾으려 하기도 했다.
간혹 정리가 되지 않는 상황과 사람들을 대하는 감정에 대해서였다.
곧,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거란 윤재에게도 이성에 대한 관심이 자랐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곤이라는
존재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뜨거움을 알게 되면서 비극인지 희극인지 묘한 결말을 맺는다.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못 느끼는 채로 무감각 속의 윤재와 자신이 받은 고통을 처절하게 온몸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곤이는 결국엔 동일시에 살고 있는 같은 부류의 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살 것인지, 괴물로 남을 것인지 스스로의 생각이 주는 여운이었다.
오늘을 비극이라고 느끼는 것 또한 어떠한 기준은 없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몫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선과 악은 동시에 존재할 테지만 그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스스로가 아닐까.
잔혹한 범죄는 날이 갈수록 진화되어 자극적인 이슈들로 쏟아진다.
당사자들은 당시의 행동은 일시적인 충동적이었음을 주장하며 어떠한 감정도 품질 않았다고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요즘 세태야 말로 훗날 분명히 곱씹고 후회되는 행동일랑 생각보다 감정이 앞서질 않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