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들을 보고 있으면 웃거나 짜증 나거나

너와 함께라면 그곳이 천국





그날은 고기가 한창 먹고 싶은 날이었다.

나가서 거하게 먹고 들어오는 길. 혹시나 했던 감은 역시나로 임신이었다.

남편에게 알리니 대뜸 낳을 거냐고 한다. 그럼 00이(첫째) 같은 아이가 뱃속에 있다는데 지우냐고 했다.

결혼 4년 차에 낳았던 첫째의 유별난 까탈스러움에 서로가 지쳐있었고 남편이 너무 육아일에 감 놔라 배 놔라 참견을 해대는 통에 이때 우리가 싸움의 최대 절정기였지 싶을 만큼 많이 싸웠다. 그래서 둘째는 천천히 갖고 싶었다고 남편은 훗날 얘기했다.

첫째의 돌을 앞두고 둘째 임신을 알게 된 터라 많이 힘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첫째를 겨우 재우고 나면 입맛도 없는데 뱃속 아이를 생각해 물 말아 밥 한 술 뜨고 TV 속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어도 눈물이 계속 흐르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거기에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원인 모를 미움을 받으며 두 달간 안절부절못해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그 이후의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음을 미안했다고 사과하셨을 땐 펑펑 울었다.

아이를 가진 엄마에게 같은 여자로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몰아세울 수 있을까 하는 서러움이 가득한 폭발이었다. 그리고 시할머니의 치매로 나에게 힘듦이 극에 달했을 때 둘째는 태어났다.

난 중이염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결국엔 모유를 끊을 수밖에 없었고 분유로 듬뿍 배불리 먹어서인지 방긋방긋 웃기도 잘하는 아이였다. 그때 알았다.

첫째가 왜 그리도 시도 때도 없이 자지러지게 울었는지. 그건 배불리 먹지 못했던 모유 탓이었는데

아이를 그토록 미워했으니 미안함으로 가득한 순간이었다.


6개월 된 둘째가 보채는 바람에 아기 띠로 업고는 첫째의 반찬을 만들다 어르는 과정에서 아이는 나의 163cm의 키 높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편에게 울고 불며 전화를 하고 대학병원으로 가 검사 일정을 잡고 후에 괜찮다는 결과를 들었지만 아이의 이마 한쪽은

바닥과 맞닿았던 충격으로 살짝 들어가 있다.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냐고 매일같이 기도했고 아이는 보고 있어도 더 보고 싶을 정도로 마냥 해맑은 웃음이 많고 정이 많은 아이로 자랐다.

그런데.......

13살의 아들은 변성기가 오고 사춘기가 왔는지 요즘 깐족의 끝판왕으로 불리고 있다.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숙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 오고 조용히 수업 잘 듣고 있는 누나 방에도 한 번씩 기웃거리다 첫째의 짜증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아들에게 자주 묻는다.

너 뭐해 먹고살래?


이건 내일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오늘에만 충실하자는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질문을 할 때면 나 스스로에게 그러지 말자고 자책하면서도 아이의 미래를 볼모로 자꾸만 다그치게 된다.

그래 놓고 이게 맞는 길인가 싶은 자책을 하기도 하고.


현실과 맞지 않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들.

그저 지금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딸.

두 아이의 인생관이 말도 안 되거나 소박한 꿈일지라도 그것이 지금 아이들이 느낀 행복의 기준으로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건 어쩜 남편과 나는 한 가정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는 증명이 아닌 걸까 싶다.

아들은 엄마는 긍정적이라서 좋다고 했다.

맞다. 뭐든 좋은 쪽으로 끼워 맞추면 될 것이다.

잘난 거는 타고나야 되지만, 잘 사는 거는 하기 나름이라고 했던 이정은 배우님의 대사처럼.

아이도 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면 되겠다.


마이 달링~이라며 징그럽게 다가오는 고슬고슬하게 올라온 너의 코 수염에 난 오늘도 웃음으로 화를 대신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