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가길 바라며
즐겁게 살아도 나만 즐겁게 살고 있다고 욕을 먹을 것 같고 기운 없이 살면 누굴 처 고생시키려고 그렇게 살고 있냐고 또 욕을 먹을 것만 같은 망상이 떠다닌다. 그래서 또 하염없이 책을 펴 든다.
온갖 잡생각 때문에 온전히 책에만 몰두하지도 못하면서 굶주림에 허덕여 작은 벌레라도 먹어야 잠시라도
버틸 수 있는 하이에나처럼 몇 글자라도 내게 위안을 주는 문장을 찾아 눈동자를 굴리고 또 굴린다.
나를 믿어보자.
괜찮다 생각하자.
아주 큰 들숨날숨으로 좀 더 버텨보자.
나를 괴롭히는 시끄러움과 번잡함을 빼 보자.
하루에 몇 번이고 되뇐다.
앞으로 살면서 수 없이 들을 수 있는 말들에 나 하나가 꺾이는 것은 너무 아까운 생이 아니던가.
집에 심어 두고 싶은 예쁜 풀꽃도 개똥이 묻어 있다면 안 뽑아 오면 그만인 것을.
곱씹으며 쓴맛을 더 느끼며 자책하거나 원망하려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이 흘러감에 몸과 마음을 맡겨 보려 한다. 어차피 상처 준 사람은 자기가 한 말도 모른다.
그런 주체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에 내 기운을 뺏긴다는 게 억울하단 생각도 든다.
상담 심리가 박재연 님께서 자주 쓰시는 아가리 파이터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렇듯 아가리 파이터들이 지껄이는 말들은 세종대왕님이 창시해 주신 진실된 고유의 언어가 아니니 무시하리라 수없이 다짐한다.
난 아직 많이 베풀고 나누고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릴 적 엄마는 내가 상장을 받아 와도 자격증 하나를 땄다고 흥분하며 말을 해도 그 흔한 잘했다 한마디를 해주지 않으셨다. 난 아이들이 독서록 상장만 받아 와도 물개 박수가 나오는 데 말이다. 그처럼 뒤돌아보니 난 끊임없이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착하다 말 한마디에 나의 본모습은 자취를 감춰가지 않았을까. 나라는 존재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나를 질책하는 게 아니라 보듬어 주려 한다.
그리고 말해 주고 싶다.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진심으로 대했던 너의 수고로움을 알아주는
네가 있으니 앞으로는 네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하면 좋겠고 너를 좋아해 주는 사람
한테만 너도 좋은 사람이 되면 되는 거라고.
나에겐 손재주라는 무한한 장점이 있다.
그걸로 나는 충분히 가치 있고 내가 가진 단점을 뒤엎을 수 있으리라 나를 믿어보려 한다.
이것을 발판 삼아 꾸준히 노력한다면 내가 꿈꾸는 희망에 도달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