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과거의 나쁜 기억들이 매일 밤마다 꿈속에 다시 나타나서 소년을 계속해서 괴롭혔죠.
잠드는 게 너무나 무서웠던 소년은 어느 날, 마녀를 찾아가 애원했어요.
"마녀님 제발... 다시는 악몽을 꾸지 않게... 제 머릿속에 든 나쁜 기억을 모두 지워주세요! 그럼 당신이 원하는 걸 뭐든지 드릴게요!"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소년은 더 이상 악몽을 꾸진 않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조금도 행복해지지 않았어요. 붉은 보름달이 뜨던 밤 소원의 대가를 받기 위해 드디어 마녀가 다시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는 원망 어린 목소리로 외쳤어요.
"내 나쁜 기억은 모두 지워졌는데 왜! 왜 난 행복해지지 못한 거죠?"
그러자 마녀는 약속대로 그의 영혼을 거두며 이렇게 말했어요.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 처절하게 후회했던 기억... 남을 상처 주고 또 상처 받았던 기억... 버림받고 돌아섰던 기억... 그런 기억들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아가는 자만이 더 강해지고, 뜨거워지고, 더 유연해질 수가 있지. 행복은 바로 그런 자만이 쟁취하는 거야. 그러니 잊지 마. 잊지 말고 이겨내. 이겨내지 못하면, 너는 영혼이 자라지 않는 어린애일 뿐이야."
둘째를 낳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중이염에 걸렸고 그로 인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래서였을까. 아직 어린아이 둘을 두고 내가 아파서 죽으면 어쩌나 하는 심리적 불안이 찾아왔고 신경정신과를 찾게 되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엄습해 오자 헛것이 보이고 한밤중에 숨을 못 쉬겠기에 응급실을 찾기도 했다. 별다른 이상 증세는 없다며 며칠 후 신경정신과를 예약해 주는 걸 시작으로 다양한 검사도 해보고 약도 먹어봤지만 딱히 이렇다 할 내게 위로가 될 만한 상담을 해주셨던 선생님은 없었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내 얘기에 함께 공감해 준다거나 내 건강 상태에 대해 뚜렷하게 말해 주지도 못했다.
매일같이 만성 불안증 약에 취해 잠이 들면 어김없이 꾸어진 숱한 악몽들.
매일의 일상 속에서도 나를 괴롭히던 약의 기운은 정신을 바로잡기 위함이 아닌 어쩜 몸과 마음을 더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마녀의 잔영에 속아 들지 말자.
악몽에서 헤어 나오기 위한 발버둥으로 잠을 깼다면 또다시 억지로 이불속을 파고들지 말자. 창문을 활짝 열어 요동치던 심장의 떨림을 잠재우기 위한 고즈넉한 새벽녘이 주는 안정감에 연착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