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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인 [가시고기]를 읽고

다음 생엔 더 좋은 부모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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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는 참 이상한 물고기예요. 엄마 가시고기는 알들을 낳은 후엔 어디론가 달아나버려요. 알들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요. 아빠 가시고기가 혼자 남아 돌보죠. 알들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답니다.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은 채 열심히 지켜 내죠. 아빠 가시고기 덕분에 새끼들이 무사히 알에서 깨어납니다. 아빠 가시고기는 그만 죽고 말아요. 새끼들은 아빠 가시고기의 살을 뜯어먹고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결국 아빠 가시고기는 뼈만 남게 됩니다.


-본문 중에서




유년시절 파출소 앞에서 아버지는 나를 버리고 절름거리며 멀어져 갔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가 되기를 소망하지 않았는데 짝사랑조차 겪어보지 못했던 그에게 한 여자가 찾아왔다. 처가의 반대로 둘만의 예식을 치르고 아이를 낳았지만 아내는 돈이나 걱정하면서 구질구질하게 살게 될 줄 몰랐다며 아이를 놓고 유학을 가더니 다녀온 후엔 이혼을 요구했다. 혼자 키우게 된 다움이가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다. 치료받는 것보다 차라리 이제 그만 죽고 싶다는 아이를 놓을 수 없어 돈을 벌기 위해 자서전 대필까지 하지만 늘어나는 병원비는 계속 체납되고 집도 직장도 잃은 채 다움이의 병은 아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퇴원을 결심한다. 아이에게 남은 시간만큼은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승합차를 타고 목적지가 없는 여행을 시작한다. 여러 날을 거쳐 정선 사락골에서 버스를 놓친 노인을 만나게 되고 노인의 목적지에 도달한 산골 자락 깊숙이에서 잠자리를 부탁했고 함께 지내며 아이의 병은 호전되는 듯했지만 병원을 벗어난 지 36일 만에 아이는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재발이었다.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기 위해 찾았던 아내를 만나 아이의 소식을 전하고 한참 뒤 아내는 일본에서 골수기증자를 찾았다고 했다. 병실에서 마주한 아이는 엄마가 프랑스로 유학을 간 게 아니라 엄마의 꿈을 찾아 자신을 버리고 간 거였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는 이야기에 심하게 거부감을 보인다. 아내는 아이를 치료할 경제적 요인이 부족하다며 프랑스로 데려가길 원하지만 그는 보내지 않았고 아내는 다시 프랑스로 떠났다. 골수 공여자가 나타난 기쁨에 한껏 들뜨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턱없이 부풀어지는 병원비에 그는 비밀리에 장기매매를 하려 건강검진을 하다 간암 판정을 받는다. 장기매매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임상실험에 참여하게 되어 병원비를 해결하고 아이는 완치 판정을 받아 아빠를 애타게 찾는데 그는 후유증으로 한쪽 눈을 잃고 다리도 절게 되자 프랑스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처지는 숨긴 채 다움이의 미래를 위해서 아이를 포기할 테니 데려가라 한다. 프랑스로 떠나던 날 밤. 자신의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몇 발자국 떨어져 공원의 한 벤치에서 아이를 만난다. 아이는 그동안의 보고팠음에 눈물을 쏟아내면서 그의 곁으로 오려 하지만 끝끝내 아이가 그토록 매만지고 싶어 했던 귓볼도 내어 주지 않은 채 그가 아이의 병원비를 위해 출간한 시집 한 권을 내어 주며 강하게 몰아친다. 사락골로 들어가고 싶다는 그를 데리고 후배 여진희가 함께 하던 날 폭설이 내렸고 그는 그 눈을 바라보며 아이를 위해 기도하다 잠이 든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 읽었던 가시고기 책과 지금은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가 된 현 심정에서 읽게 된 가시고기 개정판은 순박하기 그지없는 조건 없는 사랑만을 베풀고 있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로서 다시 한번 부모로서의 역할에 깊은 내공을 쌓게 한다.


딸아이가 바뀐 학원에 수업을 들으러 가던 첫날 교실에 앉아 있던 3명의 여중생에게 딸아이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해주고 잘 지내라고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이의 수줍은 미소가 나에게 고맙다는 표현인 줄 알았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바뀐 학원에 대한 궁금중으로 질문은 폭발했지만 아이는 그런 내 모습이 못마땅한 듯 거만한 태도를 보인다. 학원에 함께 갔던 남편이 내가 보인 행동이 딸아이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을 거라고 했고 아이에게 물어보자 "내가 알아서 할 건데 왜 엄마가 나서서 창피하게 만드냐"라고 했다. 난 한데 무리 지어 있던 여중생들의 거친 입담에 혹여라도 딸아이에게 위해를 가할까 내 아이도 그 공간 안에서 잘 지내기를 바랐던 행동이었는데.. 딸아이는 몹시나 불편했나 보다.


다음 날 아침까지 아이의 기분은 싸하다. 나도 같이 무시하는 걸로 소심하게 복수를 하고 나왔지만 남편과 차 한잔하면서 딸아이에 대해 욕을 한 바가지 했는데도 기분 나쁜 감정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앞으로 서로의 주장이 옳다며 터무니없는 일들로 거친 다툼이 예상되지만 미리 겁먹지는 않으련다.


내가 뿌린 데로 거두니라.

나도 엄마한테 말도 안 되는 일로 짜증을 내고 나의 화난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현관문을 박차고 등교하던 날이 어디 하루 이틀이었겠는가. 스스로 묵언 수행하며 하루하루 잘 버텨보련다.


외따로운 지난한 해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이 책을 읽고 한바탕 실컷 울고 난다면 당신 주변에 있는 단 한 명의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소중함을 일깨워줄 따뜻한 온기를 불어 놓을 책이 되어 줄 것이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그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새로운 날의 시작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당신에게 기적 같은 행복이 찾아오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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