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와 절교해 본 적이 있나?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진 적이 있나?
몇 년 전 '평생 친구'라고 생각했던 국민학교 동창과 서로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며 친구 관계를 끝내기로 했다. 상황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르고, 쌓아온 경험이 달라 서로의 말을 오해하고 우정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유난스러웠던 6학년 친구들.
담임 선생님이 옆반 선생님과 연애하느라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못해 우리끼리 뭉쳤는지도 모르겠다. 노처녀, 노총각 선생님들은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학교가 끝나면 가까운 장충단 공원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하고, 신당동 떡볶이 골목을 들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당시에는 떡볶이가 그렇게 비싸지 않아 아이들이 용돈을 모으면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아이러브스쿨의 도움 없이, 꾸준히 반창회를 했다. 상고(상업고등학교)에 가는 친구, 재수를 하는 친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락이 끊긴 친구, 결혼한 친구 등등 서로의 상황이 달라졌지만, 우리의 반창회는 마을을 흐르는 강물처럼 꿋꿋하게 유지되었다. 내가 떨어져 나온 지금도 계속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을 것이다.
"네가 내 카톡을 확인 안 하는 것 같아. 차단했니?"
"응."
"왜? 뭐 나한테 서운한 거 있었어?"
"그때 네가 전화로 이런 말 했을 때 서운했는데, 넌 그다음에도 또 그러더라."
"그랬구나, 나도 그때 똑같이 서운하게 느꼈는데... 그래도 서운한 감정보다 우리가 친구라는 사실이 더 컸는데 넌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니?"
"친구 안 해도 될 것 같아."
"그래, 그러자. 서운한 게 있었다면 미안하다. 용서하고 잊고 잘 살아."
사실 가족을 잃은 상실감에서 미처 다 헤어 나오지 못한 때라 모든 일에 '사람이 죽고 사는 일도 있는데'라는 마음으로 일관하던 시기였다. 애당초 나 싫다는 사람 붙잡고 늘어지는 성격도 아니다. 그렇게 삼십 년지기와 관계를 끝냈다. 그 친구와 나는 성격이 너무 달라서 내가 그 친구의 친구라고 하면, 그 친구가 나의 친구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너한테 저런 친구가 있는 줄 몰랐다며 모두 놀랐었으니 어쩌면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살던 집이 재개발되면서 나만 서울 반대쪽으로 이사했고, 결혼하면서는 아예 서울을 떠나게 되어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더 멀어졌다. 나이를 먹으면서 술을 끊어서 '동창회 때나 술 마시지.'라는 분위기도 맞추기 어려워 이참에 어릴 적 친구들과의 관계를 모두 정리했다. 이혼한 친구, 애가 넷인 친구, 아내 눈치 보느라 연락 못하는 친구, 다들 먹고살기 바빠서인지 따로 연락 오는 친구도 없었다. 하긴 나만 프리랜서로 룰루랄라 하지 40~50대엔 치열하게 살 시기이니까.
나이가 들면 소화력이 약해져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줄어드는 것처럼, 나의 성격이 굳어지고 불편한 것을 참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사람 관계도 좁아지게 되는 것 같다. 불편한 상황과 관계가 싫어서 돈 주는 직장도 그만뒀는데,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마주 앉아있는 시간은 너무나 아깝지. 더구나 초예민한 사람들은 상처주기도 싫고, 상처받기도 싫어서 고슴도치처럼 점점 더 웅크리고 자기만의 세상에 틀어박히는 걸 좋아한다. 나이 들수록 함께 여행할 친구가 필요하다지만, 세상엔 혼자서도 배울 것, 즐길 것이 너무나 많은 걸...
나이가 들면 주름이 생기듯, 체형이 변하듯, 사람들과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에도 적응이 필요하다. 학창 시절 친구가 최고다, 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는 계산이 앞선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직장에서 만난 동료가 베프가 될 수도 있고, 아이 친구 엄마가 내 친구가 되기도 한다. 바람을 잡으려는 시도가 헛되듯 사람도 오면 즐거이 만나고, 가면 잡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물며 자식도 성인이 되면 놓아주어야 하는데, 어른과 어른의 만남은 서로의 의지를 존중하고 자유로워야 하지 않겠나.
혹여나 지금 사람 때문에 마음 끓이는 이가 있다면,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으니 그 시간에 맛있는 것 먹고 자신이 행복해질 생각을 더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