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혜 펠로우ㅣ연극연출자, 희곡작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혁신가 레이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과 함께하는 사회 혁신가를 소개합니다. 모두의 당연한 일상을 위해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이들이 앞당기고 있는 내일의 당연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구자혜 펠로우는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에서 활동하는 연출자이자 작가입니다. 사회에서 편견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이슈와 사람들을 연극 무대 위에 올려 '보이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통해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구자혜 펠로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무대가 가진 힘을 믿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글 쓰고 연출하는 구자혜입니다. '여기는 당연히, 극장'이라는 팀에서, 연극을 통해 우리 사회 소수자들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 ‘여기는 당연히, 극장’은 어떤 연극을 만드나요?
한 편의 공연은 미약하나마 힘을 가져요. 소수자를 재현하는 연극적 방식, 젠더 규범에 갇히지 않은 캐스팅 등 연극의 관습을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조금씩, 지속 가능하게 균열을 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은 퀴어의 존재를 연극을 통해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천착해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공연은 <드랙X남장신사>였어요. 한마디로 ‘퀴어 대잔치’ 공연입니다. 세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퀴어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이고 유머러스하게 드러내는 힘 있는 작품이에요.
작년에는 동물권 문제를 다룬 <로드킬 인 더 씨어터>가 있었습니다. ‘내가 한 번도 연극에 초대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존재가 뭘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동물이더라고요. 인간이 소위 말하는 예술에서 동물을 다룰 때의 윤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공연이었습니다.
Q. 연극을 통해 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연극을 시작한 이유는 무대와 극장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어요. 무대는 한없이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일해보니 굉장히 보수적이고 제한적이에요. 지켜야 하는 규율들이 많더라고요. 기울어진 세계예요. 현실과 같이, 보이지 못하는 존재들도 많고요.
내가 만나보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세상엔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목소리들이 있다는 것. 그런 낯선 목소리들을 담아내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소수자 가시화 공연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Q. 퀴어 연극을 만들며 생기는 고민들도 있을 것 같아요.
퀴어 공연을 앞두고 배우들이 굉장히 긴장을 한 적이 있어요. ‘이 당사자성의 언어가, 매우 특정한 이 언어가 관객들한테 전달이 될까?’하는 불안감이었죠. 모두 너무너무 긴장하고 공연을 올린 적이 있는데, 끝나고 배우들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어떤 말을 하든 관객이 기꺼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환대의 감각이 무대 위 배우들한테 넘어왔다고 하더라고요.
그 무엇도 어떤 것을 확실하게 변화시킨다고 얘기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연극에서 힘 있게 했던 배우들의 발화 그리고 제가 어딘가에서 떨리지만 용기 내서 던졌던 말들이 “하루 치의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사회를 당장 크게 변화시키진 못해도, 조금 더 이 연극을 책임감 있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구자혜 님은 최근 들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극장이 안전해졌다고 하지만 이 세계가 안전해진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공연을 하고 그곳에서 받은 개런티를 다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후원하고, 공연으로 받은 상금을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 기부하는 등 ‘여기는 당연히, 극장’은 연극이라는 활동의 사회적 확장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라는 개인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우리가 여기 있다고 크게 외치고 싸우고 연대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빚져왔다고 느껴졌어요. 연극이라는 매개를 통해 관객과 만나는 일을 해오면서 좀 뒤에 숨어 있었는데, 제 존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무대에서 어떤 존재를 다루느냐와 마찬가지로
어떤 존재가 극장에 올 수 있게 하느냐도 중요해요.
내가 어떤 관객을 오지 말라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라는 것에서 출발했어요.
Q. 배리어프리 공연을 기획하신 것도 인상 깊습니다.
편의상 배리어프리(barrier free)라는 말을 쓰지만, 장벽이 완전히 없는 극장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꽤 자주 배리어프리 공연을 만드는 연출로 호명이 되는데, 그게 편하지가 않아요.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관객들과 함께 실행하고 있거든요. 경험치를 누적하고 이를 공유하고 관객의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면서요.
2018년 시각장애인 인물이 나오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저는 부끄럽게도 실체로서의 시각장애인 관객의 접근성을 고민하기보다 저의 연출로서의 미학적 실험에 더 집중했어요. 그리고 그 극장엔 휠체어 진입이 불가능했었는데, 공연을 함께 한 프로듀서의 건의로 경사로를 설치했습니다. 덕분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한 명의 관객이 공연을 관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공연이 끝나고 경사로는 철거되었고 저는 다음 해에 같은 극장에서 또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담당자에게 경사로를 영구 설치할 수 있도록 애써보자고 했는데, 담당자가 구청과 소통하는 등 백방으로 애써 경사로를 영구 설치했습니다. 그렇게 그 극장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객을 배제하지 않는 극장이 되었습니다. 완전할 수 없지만, 누가 이 극장에서 애초에 배제되었는가를 고려하고 구체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Q. 연극에는 각별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시대의 연극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연극에서는, 피와 살과 뼈와 영혼을 가진 배우라는 생명체가 사람들 앞에서 마치 지금 발생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잖아요. 사실은 다 외운 건데 말이죠. 연극은 동시대의 죽음을 함께 목도한 사람들이 배우와 관객으로 만나는 장인 것 같아요.
배우가 연기의 테크닉 같은 본인의 예술에 갇히지 않고, 동시대 시민으로서 내가 겪은 혹은 내가 목도한 것들을 관객에게 전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것이 연극이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제가 동료들과 하고 있는 연극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요. 우리 사회가 어떤 존재를 배제해왔는지를, 직업으로서의 기술을 활용해서 끊임없이 재현하고 정치적인 미학을 만들어가는 것이 제가 동료들과 하고 싶은 이 시대의 연극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루는 어떤 존재들의 언어가
극장 안에 갇히는 것을 지양하는 것이
제가, 저희 팀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Q. 구자혜 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가 행해질 때, ‘나중에’라는 말을 자주 보게 되죠. 아직 사회가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절차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기다려야 한다고 하잖아요.
기다리지 않는 세상이 지금 당장 왔으면 좋겠어요. 나중을 기다리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차별과 혐오와 배제를 겪어야 하잖아요. 누군가가 그런 차별과 혐오와 배제를 행했을 때 “다르다”가 아니라 “틀렸다”라고 바로 이야기할 수 있고 때로는 처벌로도 이어질 수 있는, 그것이 너무 당연하게 행해지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여기는 당연히, 극장’에는 사업자 대표인 구자혜의 권력 남용으로 마련한 복지혜택이 있어요. 큰 금액은 아니지만, 동료의 성확정 수술 비용 일부를 지원합니다. 마땅히 누려야 하지만 사회가 보장해주지 않는 것,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나중으로 미루는 영역에서 ‘여기는 당연히, 극장’은 당장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확장해나가고 싶어요.
인터뷰 및 본문 정리 : 백수진
일러스트 : 애슝 (@ae_shoong)
구자혜 님과 함께하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