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은 펠로우ㅣ사단법인 두루 공익변호사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혁신가 레이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과 함께하는 사회 혁신가를 소개합니다. 모두의 당연한 일상을 위해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이들이 앞당기고 있는 내일의 당연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강정은 펠로우는 9년 차 공익 변호사입니다. 인권 침해 현장에 있는 아동∙청소년을 주로 돕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일합니다. 우리 사회에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법률가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강정은 펠로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 강정은입니다. 저의 경력은 모두 공익 활동으로 채워져 있어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직후부터 비영리 공익변호사 단체인 ‘사단법인 두루’의 설립을 도왔고, 지금까지 상근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뭘 바꿀 수 있을까?
한 명이라도, 어느 하나라도 바꿀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어!
Q. 공익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소수자, 약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어서 법을 공부했고요. 법대 재학 시절,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단체를 통해 본격적으로 ‘활동’에 발을 들였습니다. 반차별팀 자원활동가로 일하면서, 여러 인권의 영역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었어요.
노숙인들을 직접 만났던 ‘홈리스 구술 생애사 인터뷰’가 기억에 남습니다.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었고, ‘이런 우리의 활동으로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하는 자조도 나왔는데요. 노숙인의 목소리를 끝까지 담아내면서 저희가 찾은 답은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한 사람이라도 달라질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도 자원활동을 하며 전통적인 변호사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게 되었어요. 법정에서 하는 변호 활동 외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 개선 활동에도 법률가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익변호사의 꿈을 구체화하게 되었습니다.
Q. 법의 사각지대 중에서도, 아동청소년 문제에 유독 주목하는 이유가 있나요?
법학전문대학원 시절, 청소년 참여법정을 참관한 적이 있어요. 그때 재판을 받는 소년이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거예요. 판사님이 “이 재판이 끝나고 뭘 하고 싶냐”라고 묻는데, “꿈이 없다”라고 하더라고요.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습니다. ‘이 소년이 다시 꿈꾸게 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시작된 순간이었어요.
현장에서 경험해보니, 아동청소년의 일은 사실 사회 전반의 일이기도 해요. 아동의 문제 뒤에는 그 아동을 놓쳤던 수많은 시스템이 있거든요. 아동 개인의 문제라고 말하기 어려운 거죠. 아동청소년 영역은 다른 인권 영역에 비해서 당사자 조직도 굉장히 약합니다. 자기 일에 나서서 목소리 내는 일이 성인에 비해 어렵죠. 사회가 먼저 다가가서 들어줘야 하는데,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은 여전히 미숙하고 열악합니다.
출생등록, 성 착취, 아동학대, 소년사법, 수용자 자녀 등 정말 다양한 아동 관련 이슈가 있는데요. 이런 이슈에 정말 관심 가지고 법안을 발의하는 의원을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법무부 등 정부 부처 회의에 가도, 아동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아동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입김이 더 크고요.
이런 열악한 시스템을 직시하고, 그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으로 아동청소년 영역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Q. ‘두루’의 활동은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는 다른 활동과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요?
아동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 주체’로 바라보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어른들이 아동청소년에게 필요한 최선의 방안을 제시하더라도, 결국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권리를 찾는 아동청소년의 몫이 있거든요. 아동청소년이 그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상황을 이겨낼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 또한 우리의 역할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공익 변호사가 되고 나서 제일 열심히 했던 일이 성착취 피해 아동을 돕는 활동이었습니다. 성매매를 강요하고 알선하는 가해자와 동거하면서 매일 착취당하는 아동을 인지해도, 피해 아동이 거부해서 가해자를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아동을 돕는 근본적인 방법은 단순히 가해자와 분리하고 생활비를 지원하는 차원이 아니에요. 아동이 성착취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과 동시에 아동청소년 자신이 왜 피해자인지, 어떻게 권리와 존엄을 침해받고 있었는지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도와야 재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 소송뿐 아니라 제도 개선에도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의뢰인 한 명을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소송을 통해 기존 법의 문제가 드러난다면 이를 바로잡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월 민법상 ‘자녀 징계권’이 삭제되었는데요. 법무부가 아동청소년 당사자 조직의 의견을 청취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징계권을 폐지하라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이끌고, 여러 단체 등과 연대하며 이뤄낸 성과였습니다. 이처럼 관계부처, 국내외 인권기구, 시민사회단체들과 협력해서 법 제도 정책을 바꾸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 차별점일 것 같습니다.
아동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 주체'로 바라보고 있어요.
Q. 아동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제도를 변화하는 일에는 여러 각도의 접근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맞습니다. 법을 바꾸더라도, 그 법이 입법 취지에 맞게 현장에서 잘 작동하려면 인식 개선이 꼭 필요해요.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9년 유튜브 채널 ‘씨리얼’과 함께 제작했던 <전과자의 자식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라는 영상이 있습니다. 수용자의 자녀들은 부모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차별의 시선 속에서 자라곤 합니다. ‘수용자 자녀 또한 차별 없이 마땅히 존중받고 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아동’이라는 메시지를 알리기 위해 영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2019년 9월 공개된 이 영상은 2022년 8월 현재 조회수 166만 회로, 두루가 제작한 영상 중 가장 많은 이가 본 영상이기도 합니다.
상시적으로는 두루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그리고 최근 시작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두루의 메시지와 활동을 알리고, 확산하고, 연결하고 있습니다.
Q. 공익 변호사의 삶, 지치는 순간은 없나요?
함께 하는 동료가 잘 늘지 않는 점이 가장 어렵습니다. 특히 아동에 대한 관심은 턱없이 부족해요. 공익 인권 활동은 ‘적은 급여로 희생하는 일’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강한 것 같아요.
“꼭 비영리 단체에서 일해야 해? 전업이 아니어도 되잖아.”
이런 얘기도 많이 들어요. 그런데, 비영리 영역에도 전문성이 필요해요. 공익법 생태계를 잘 다지고 규모를 키우는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이번 펠로우 선정이 저와 같은 일을 하는 활동가나 법률가에게 긍정적인 신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하는 활동은 충분히 가치 있고 지지받을 만하다’라는 메시지요. 이 일이 갖는 가치와 의미, 매력을 널리 알려서 더 많은 예비 법률가들이 공익 인권 활동에 뛰어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공익법 생태계를 잘 다지고
규모를 키우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Q. 일하면서 가장 조심스러운 점은 무엇일까요?
상처받은 아동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아직도 쉽지 않아요. 국가인권위원회나 지자체와 함께 아동복지시설 방문 조사를 할 때 전문가로 참여를 많이 하는데요. 아동과 대화를 나눈 뒤엔 오늘 인터뷰가 어땠는지 꼭 물어보거든요.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어요. “왜 그렇게 쉽게 질문을 하나요?” 현실을 청취한다는 명목으로, 아동들에겐 참 많은 어른들이 찾아가거든요. 지자체도 가고, 인권위도 가고, 보건복지부도 가고. 그 과정에서 받는 동정의 눈빛, ‘너의 불행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질문들이 불편하다는 거죠.
결국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아동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들을 권리의 주체로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한번 더 깨닫는 계기가 됐죠. 현장에서 아동들을 만나면서 배우는 것이 많아요.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마음을 나누고 지지해 주는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아동은 분명히 달라질 수 있어요.
Q. 강정은 님이 꿈꾸는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아동청소년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는 세상이요.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해 거리에 나섰을 때 한 청소년 활동가가 들고 있던 피켓이 지금도 기억이 나요. “우리가 지금 여기 있다. 청소년의 목소리를 공부하라.” ‘두루’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이거다, 싶었어요.
소년범들을 변론하면서 느껴요. 소년재판을 받는 아동도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다르지 않거든요. 우리 사회가 ‘학대 피해 아동’이나 ‘위기청소년’으로 분류하는 아동도 참 많아요. 그들이 그런 범죄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무엇을 했는지를 더 돌아봐야 해요. 그 소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의 시각을 극복해야 합니다. 아동을 탓하지 않는 사회, 아동을 위한 책무를 다 하는 사회로 나아가려면 아동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해요.
아동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학교, 지역 의회, 국회 등 아동의 삶과 연결된 모든 곳에서 아동이 좀 더 많이 등장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일상을 꿈꿔 봅니다.
인터뷰 및 본문 정리 : 백수진
일러스트 : 애슝 (@ae_shoong)
강정은 님과 함께하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