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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가사리 Sep 27. 2021

D+250 / 스타트업은 뭔가요

모르는 게 다행이었다.


굉장히 보수적인 나에게 돈을 버는 방법은 지금껏 두 가지였다. 열심히 일해서 연봉을 높이거나, 아껴쓴 돈을 모으는 것. 어떻게 보면 가장 돈을 못 버는 방법인데 위험 회피형인 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집안 환경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침 5시면 눈을 떠 저녁 늦게까지 일했던 부모님.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 아니라는 아빠의 말씀. 드라마에서 보던 '빨간딱지' 이미지는 사업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5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땐 대기업을 박차고 나왔지만 조그마한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선술집에서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거나, 흥미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신나서 떠들던 눈빛과 비슷했는데 어쩐지 오늘은 빛나는 눈망울 속에 긴장감이 깔려있었다.


"나 사업할 건데... 스타트업이라고 많이 들어봤지? 그거 하는 거야. 창업. 같이 할 사람도 만들었고. 아이템도 오랫동안 지켜봐왔어"


이제 와 말하지만 세상 물정을 알았더라면, 사업하는 지인이 있었더라면 말렸을까. 당시 난 너무 미숙했고 스타트업의 ㅅ자도 몰랐다. 그래. 끈기 없는 나와 달리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네가, 스타킹을 만들든 스타트업을 하든 뭐라도 하겠지 싶었다. 솔직히 박스권 안에 갇힌 답답한 주식처럼 큰 변화 없는 나와 달리, 항상 새로운 이슈가 있는 그의 삶이 영 싫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난 그저 단짠단짠 갓 뜨겁게 나온 볶음우동을 묵직하게 입에 넣었다. 바삭한 치킨 튀김을 씹어 넘기고 아무 생각 없이 맥주를 마셨다. 시원한 목 넘김을 느끼며 봤던 그의 얼굴은 "휴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네"라는 안도의 표정이었다. 그 순간은 내 뇌리에 마치 흑백사진처럼 저장돼 있는데, 모진 풍파 속에서 함께 모래바람을 맞을 때 이따금씩 생각났고 솔직히 후회됐다. 그냥 말렸으면 좋았으려나. 아니야 말렸어도 소용없었을 거야. 두 가지의 의견들이 날 괴롭게 했다.


창업자들은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더 나은 삶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들의 노력으로 최근 몇 년간 많은 사람들이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문자 한 건 보낼 때마다 30원씩 나가던 옛날과 달리, 우리는 제약 없이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집에서 버스나 지하철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됐다. 예약 시스템을 이용해 일정을 짤 수도 있고, 내비게이션으로 더 이상 헤매지 않고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업이든 창업자든 그 뒤에 남 모를 눈물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가시밭길을 함께 걷는 동반자 역할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누군가 돈은 대리석 위에 곱게 올려져 있지 않고 진흙 속에 파묻혀 있다고 했는데, 그 진흙 속에서 같이 뒹군다는 건 정말이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된 일이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장밋빛 미래 속에 숨겨진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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