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까사

by 이다

나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 특별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어서 미신적인 요소를 배척하는 건 아니다. 단지,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건 까사가 날 때부터 그런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는 비참한 사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걸 인정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강아지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은 이웃들은 대개 ‘내가 뭘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을 짓기 일쑤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서 키웠던 강아지 이름은 ‘까사’였다. 무슨 뜻이라도 있느냐고 연이어 질문이 들어오면 우리 가족은 별 뜻은 없다고 가볍게 답했다. 그건 단순한 사실이었다. 이웃들은 풀리지 않은 의문을 애써 덮었지만 여전히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했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까사의 이름을 지은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세 돌이 지날 무렵 우리 집에 새로 찾아온 가족을 보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까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 번도 아니고 볼 때마다 까사! 까사! 하고 부르며 졸졸 쫓아다녔던 모양이다. 부모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강아지의 이름을 까사라고 지은 것이었다. 그때 내가 ‘바라쿠에토시’ 따위의 더 어려운 소리를 내지 않았던 걸 다행으로 여긴다. 적어도 까사는 부르기에 어렵지 않은 이름이니까.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특히 까사는 나를 잘 따랐다. 물론 나도 갈색과 노란색이 섞인 털에 귀가 기다랗게 내려온 까사를 몹시 좋아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에도 까사와 나는 서로 잘 어울렸다고 한다. 세 살 아래인 동생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언젠가 동생보다 더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나. 나라는 존재를 강조했지만, 사실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은 모두 까사를 사랑했고, 까사 역시 우리 가족 모두를 사랑했다. 가족 중 누구라도 집에 돌아오면 어디선가 뛰쳐나와 꼬리를 좌우로 쉬지 않고 흔들며 반겨주던 까사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까사야, 까사. 특이한 이름이지?”


그래서 시온이가 안아 올리며 소개해 준 강아지 이름을 들었을 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불길한 느낌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뭐랄까, 믿지 않았던, 정직히 말하면 믿고 싶지 않았던 운명론을 마주한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나는 ‘그래, 꽤나 특이한 이름이네.’ 하고 가볍게 툭 던지듯 대답하고는 그 느낌을 부정하려 애를 썼다.


시온이네 강아지는 검은색과 흰색 털이 섞여 있는 데다가, 과장 좀 보태 행여 지나가다가 실수로 밟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 크기도 아주 작아 우리 집에서 키웠던 까사와 닮은 데라고는 이름 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름이 이름인지라, 시온이네 집에 있는 내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까사가 신경 쓰였다. 문제는,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까사를 바라보는 시온이의 따뜻한 눈빛 역시 계속 신경 쓰였다는 점이다.


“너도 강아지 키웠었어? 우리 집에서도 강아지 키우는데... 혹시 오늘 학교 끝나고 보고 갈래?”


툭 까놓고 말해 박시온은 그다지 잘 생기지 않았다. 그저 눈이 좀 클 뿐이었다. 커다랗고 반짝이는 눈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가기는 미안할 정도로 시온이의 눈은 분명히 매력적이었다. 그 눈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빠져들 듯한 마음이 들고는 했다. 삼류영화에나 나올 법한 멘트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불쑥 튀어나온 시온이의 얼토당토않은 제안을 내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사실 시온이가 까사 - 당연히 시온이네 강아지를 말한다 - 를 안아 올리기 전까지 나는 쿵쾅대는 심장을 도무지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남자인 친구의 집에 놀러 갔던 게 도대체 언제였더라.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어떤 남자아이의 생일파티에 초대돼 참석했지만, 수줍음이 많았기에 제대로 말 한마디 못 붙이고 어색하게 앉아만 있다가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내 나이가 벌써 나름대로 십 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도, 돌이켜 보면 여전히 남자인 친구를 대하는 건 익숙하지 않다.


어쨌든 그렇게 시온이의 뒤를 따라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거실에 발을 디디니 까사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주인을 알아보고 부리나케 달려 나왔던 것이다. 곧 시온이는 까사를 안고 이름을 알려준 다음, 여전히 까사를 안은 채 내게 집안 여기저기를 소개해 주었다.


시온이의 방에서는 여러 가지 과일이 섞인 향기가 났다. 아마도 방향제 같은 걸 뿌린 듯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방향제를 뿌리고 사는 건 아니겠지. 어쨌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향이었다. 나와 달리 시온이의 침대 위에는 옷가지 따위가 널브러져 있지도 않았다. 모든 책은 책장에 꽂혀 있었고, 방바닥에는 어떤 물건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어색해 보였다. 누가 매일 이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정돈을 해놓고 살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너, 혹시 내가 너네 집에 올까 봐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거야?”


아차, 싶었다. 내가 뭐라고, 마치 내게 잘 보이려고 청소라도 해 둔 거냐는 식으로 물은 걸까. 시온이가 뭐라고 생각할까.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듯 가볍게 물어봤다면 또 모를까, 말투는 쓸데없이 또 왜 이렇게 진지했던 걸까. 청소 같은 거야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감정 없이 그냥 할 수도 있는 건데 말이다. 자의식 과잉이다. 그것도 심각한 수준이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지는 게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응? 청소? 아니, 뭐... 나 평소에도 청소 자주 해. 그냥 한 거야. 아, 까사가 침대에 올라왔었거든. 그래서 털도 치우고 하다가...”


그런데 슬쩍 눈을 돌려 보니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시온이의 얼굴도 새빨개진 채였다. 언제 시온이의 품 안에서 빠져나갔는지 까사는 침대 위에 발을 디뎠다가 잊고 있던 일이라도 떠오른 듯 총총히 방을 빠져나갔다. 어색하게 서 있던 시온이가 마치 남의 방에 온 것처럼 두리번거리더니 책상 앞 회전의자에 앉았고, 내게는 침대에 앉으라고 말했다. 활동복을 입고 하교하길 잘했다. 나는 아직 채 식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시온이의 말에 따랐다.




맞벌이를 하고 계시는 부모님께서는 보통 일곱 시는 넘어야 집에 들어오신단다. 시온이는 나와 달리 매일 학원에 가는데, 오늘은 학원 사무실 보수공사를 하는 날이어서 안 간다고 했다. 그래서 조금은 갑작스럽게 내게 집에 놀러 오라고 말했던 걸까. 그러면 앞으로는 이렇게 시온이와 시간을 보내기 어려운 걸까. 가만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온이가 깜빡했다는 듯 거실로 나가다니 오렌지주스가 담긴 컵을 가져와 내밀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나눠야 할까 어색하기도 했지만 곧 방 안에 있는 물건들로 시선을 돌려 이것저것 가리키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시온이는 컴퓨터게임을 가장 좋아하기는 하지만, 웹툰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웹소설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고 했다. 주로 판타지물을 즐겨 본단다. 책장에는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판타지소설책 몇 권, 그리고 드물게 인문학책이 꽂혀 있기도 했다. 얼핏 봐도 굉장히 두껍고 어려워 보이는 책도 눈에 띄었다. 어려운 책도 보냐며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주자, 사실 사놓고 읽지 못한 책도 많다며 겸연쩍게 웃는 시온이의 모습은 살짝 귀여워 보였다.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그런데 어느 순간 시온이가 목소리를 한 톤 낮추고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그래. 뭔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궁금하기도 했고 약간의 긴장감도 들었다.


“혹시… 남자친구 사귄 적 있어?”


왜 이런 걸 물어보는 걸까. 혹시 나를 남자경험이 많다고 본 건 아닐까. 내가 그런 이미지로 보였나.


“없는데. 근데 그게 왜 궁금해?”


표정과 말투로 드러난 내 생각을 읽었는지 시온이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니… 그냥… 남자친구를 만든다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나는 시온이의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여러모로 곱씹었지만 결국 만족스러운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후로 우리는 한참 동안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문득 이 넓지 않은 공간 안에 시온이와 단 둘이 있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입을 떼는 게 더욱 어려웠다. 얼마쯤의 시간이 더 흐른 후, 나는 곧 침대에서 일어나 이제 가야겠다고 말했다. 시온이는 황망해하며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언젠가부터 쿵쾅대고 있는 심장박동소리를 얼른 가라앉히고 싶었다.




한사코 만류해도 시온이는 우리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고,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상관없다고 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 기분은 좋았지만, 동시에 함께 가는 동안 어떻게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져야 했다.


아파트를 나온 뒤 우리는 가로수 그늘 아래로 걸었다. 좁은 공간 안에 함께 있었을 때보다는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게 느껴졌다. 귀를 울리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우리가 한여름의 시공간을 함께 보내고 있음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하는 마음을 안고 있으면서도 정작 발자국을 땅바닥에 새기듯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디뎠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한 분을 제외하면 길 위에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바로 옆의 4차선 도로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그래서인지 이따금 지나가는 자동차는 모두 바람을 가르며 쌩쌩 달렸다. 노란색 점멸등이 깜빡이는 횡단보도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내 맞은편의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며 도로를 조심스럽게 건너려는데, 시온이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듯 탄식하는 소리를 냈다.


“미안한데 집에 뭘 놓고 왔어. 조금만 기다려. 금방 올게!”


급히 몸을 돌려 뛰어가는 시온이를 향해 뭘 놓고 왔냐고, 그럼 그냥 나 혼자 가도 된다고 말했으나 듣지 못했는지 시온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정류장 의자에 홀로 앉아 시온이를 기다렸다. 그런데 무심코 둘러본 주변 풍경이 어딘가 낯이 익어 기시감이 느껴졌다.


운명은 정말로 정해져 있지 않은 걸까. 나는 운명론을 믿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믿는데도 거부했던 걸까.




까사가 때 이르게 무지개다리를 건넌 건 내가 여덟 살 때였다. 까사를 산책시키던 중, 놀다가 귀가하던 동생이 우연히 우리를 발견하고는 까사를 크게 불렀다. 그러자 까사가 갑자기 몸을 돌려 동생을 바라보았다. 나는 얼떨결에 목줄을 놓쳤고, 까사는 자신을 향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육중한 물체를 눈치채지 못한 채 동생이 있던 건너편을 향해 차도로 뛰어들었다.


이후로 나는 하얀 포터 트럭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아니, 거기에다가 눈길도 주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까사의 죽음이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라고 여겼었다. 아마도 매일같이 울다가 쓰러질 만큼 슬퍼하던 내게 책임을 지우고 싶지 않았던 게 가족들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가족은 반년 뒤 전세 계약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사를 가버렸다. 누구도 슬픈 기억을 굳이 안으며 더 이상 그곳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때 우리 가족이 살던 곳도 꼭 이랬다. 오가는 사람은 드물고, 가끔 보이는 자동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던 동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아마도 평생토록 나를 따라다닐 죄의 굴레이자 업보이기도 했다. 순간, 눈앞에 보이는 차도 위로 까사가 다시 한번 뛰어들었다. 아니, 뛰어든 것은 까사가 아니라 시온이였다. 동시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차도를 따라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오는 하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목청이 터져버릴 만큼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고 한다. 곧 삶이 송두리째 뒤집힐 거라는 예감이 엄습해 머릿속이 캄캄해지는 순간. 그래서 슬로비디오를 튼 것처럼 눈에 담긴 모든 피사체가 느려지는 순간. 그게 바로 지금이라니. 왜 지금일까. 눈앞에서 까사의 사고가 재현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똑같은 사고가 하필 시온이에게 닥쳤기 때문일까. 혹은 둘 다일까.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뜨지 않았다. 아니, 뜨지 못했다. 두렵고 끔찍한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직 시온이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그렇다면 눈을 감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이 섞여 머릿속에 퍼뜩 떠올라 눈을 떴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온이도, 하얀 물체도. 그저 텅 빈 풍경만이 소름 끼칠 만큼 평화롭게 서 있었다.




“괜찮아?”


그런데 귓가를 파고드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옆에 시온이가 서 있었다. 반은 걱정하는 표정이었으나, 나머지 반은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박시온... 네가 어떻게 여기 있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시온이의 걱정하는 기색이 점차 황당해하는 기색으로 변해갔다.


“무슨 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높였다.


“너, 길 건너다가 차에 치이지 않았어?”


여전히 황당해하며 시온이가 말했다.


“건너려고 했는데 네가 소리를 질렀잖아. 그래서 깜짝 놀라 멈춰 섰더니 차 한 대가 눈앞으로 지나가더라고. 치이진 않았어.”


눈을 감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내게 시온이가 다시 말을 걸었다.


“괜찮은 거야? ...그런데, 나 때문에 소리 지른 거야? 사고라도 날까 봐?”


“애가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 내가 소리를 질렀으니까 망정이지, 거길 그냥 건너면 어떡해! 얼마나 가슴이 내려앉았는 줄 알아? 그래 놓고는 뭐, 치이진 않았다고? 그렇게 말하면 다야?’


내 마음은 아무것도 모른 채 묻는 시온이의 모습에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까사에게 벌어졌던 사고가 생각나 아찔했고, 시온이가 그걸 떠올리게 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온이에게 큰일이 날 뻔했다는 사실에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참지 못하고 말을 쏟아내는 내 눈에는 눈물이 맺혀 어른거렸다.


“미안해. 많이 놀랐어? 미안, 미안해...”


씩씩거리며 말을 마친 뒤에야 숨을 몰아 쉬며 아직도 떨리는 가슴을 서서히 진정시켰다. 시온이는 여전히 옆에 서서 어쩔 줄을 모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부모님께 혼나는 아이 같은 모습이어서 갑자기 미안해졌다. 방금 전 생과 사의 기로에 섰던 친구를 앞에 세워두고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도 새삼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겸연쩍는 웃음소리에 시온이가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시온이는 멋쩍은 미소를 한 번 짓고는 내 옆에 앉았다.


“이게 뭐야?”


“강아지 좋아한다고 해서... 가는 길에 주려고 했는데 바보 같이 집에 놓고 나왔던 거야.”


시온이가 내민 손바닥 위에는 앉은 채 혓바닥을 내보이고 있는, 갈색과 노란색의 기다란 털이 섞인 강아지 한 마리가 달린 키링이 있었다. 여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키링을 보자 정류장 안에 감돌던 따스한 기운이 가슴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듯했다. 시온이는 여전히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커다랗고 매려적인 눈을 보고 있노라니 바로 전 집 안에 함께 머물렀었을 때처럼 또 심장이 쿵쾅거렸다.


“고마워…”


가까스로 입을 떼고 키링을 집어 들자 시온이가 내게서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떡볶이 맛있는 곳 있는데 같이 갈래?”


시온이도 나처럼 가까스로 입을 뗀 것 같았다.


“갑자기 떡볶이? 지금 말이야?”


“응, 지금.”


“나 바래다준다며.”


“먹고 나서 바래다주면 되는데...”


“그럼 너무 늦잖아.”


“뭐가 늦어, 이제 겨우 다섯 시인데.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지?”


시온이네 집에 놀러 간 다음부터 함께 버스를 타고 떡볶이를 먹으러 갔던 것까지. 그리고 중간에 정류장에서 있었던 일도. 여전히 모두 기억에 생생하다. 가끔 이때 이야기를 꺼내면, 시온이는 한 술 더 떠 그날 먹은 떡볶이가 맛있지는 않았다며 덧붙이고는 한다. 쓸데없이 말이다. 사실 떡볶이의 맛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날부터 더 가까운 친구로 지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 사이로 만족하느냐고? 글쎄. 하지만 욕심내고 싶지 않다. 아직은 불확실한 미래를 굳이 그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확실한 건 역시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을 대로 필요는 없다는 거다. 까사라는 이름을 다시 들었을 때 들었던 느낌은 말 그대로 느낌에 불과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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