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를 접한 사람들 중 제법 많은 이가 자신의 유형과 반대되는 지표를 강화할 수 있는지, 더 잘 활용할 수 있는지, 혹은 더 나아가 반대유형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궁금해하는 수준을 넘어 그렇게 되고자 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지표를 강화한다거나 활용한다는 표현 자체에 어폐가 있기는 하지만,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므로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물론 이런 내 생각에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고, 또한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것까지는 부정하지는 않겠다. 즉,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틀렸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하지만 한 가지 확고한 의견은 고수하고 싶다. 바로, 만일 반대유형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게 결코 바람직한 선택지는 아니라는 의견이다.
이유가 뭐냐고? 먼저 늘 그렇듯 기본으로 돌아와, MBTI의 의미를 살펴보자. 이는 단지 선호지표이다. 무엇을 선호하는지 자가설문 등을 통해 가려낸 결과일 뿐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능력이나 역량을 판가름해 알려주는 지표가 절대 아니다. 그래서 MBTI 결과를 <수학점수가 낮으니 더 열심히 공부해서 점수를 높이세요.> 와 같이 받아들여서는 아주 곤란해진다.
밖에서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집에서 책을 읽기 좋아하는 사람보다 우월한 게 ‘당연히’ 아니듯, MBTI 지표는 우월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ISFJ인 당신은 그저 타인을 만나기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선호하고, 관념적인 개념보다 감각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요소에 더 관심이 많고, 사안의 논리성을 확보하기보다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며, 판단을 유보하기보다는 주어진 정보를 통해 가급적 빨리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에 따라, 어쩌면 생각보다 자주, 선호하지 않는 선택지를 고를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당신뿐 아니라 모두가 뭔가를 더 선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호하지 않는 선택도 하는 사람이다. 너무나 ’당연하고도 객관적인 사실‘이다.
즉, 유형을 바꾸려는 사람은, 선호하지 않던 선택지를 선호하게 될 때까지 선택하겠다는 사람인 것이다. 자아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이라면 고려해 볼 만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자아가 정립된 이에게 이를 갑자기 바꾸려는 행위는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져올 게 자명하며, 이 스트레스를 굳이 감내한다 하더라도 살아오면서 여태껏 선호하지 않던 선택지를 분명하게 선호하게 될 거라는 보장이 전혀 없는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사람 안 바뀐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때로 바뀌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환경 등의 적응을 통한 일시적 결과의 변화일 뿐 본질의 변화는 아닐 것이다. 아니면 진정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결과이거나.
내가 J가 될 수 있을까? 몇십 보 양보해 될 수 있다 치자. 하지만 굳이 왜 그래야 할까? 될 자신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다른 유형이 부러워서, 혹은 자신의 유형이 싫어서 견딜 수 없다 해도 굳이 선호하지 않는 선택지를 억지로 고를 필요는 없다. 이때 최선의 선택지는 바로 MBTI 따위는 잊어버리고 살던 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