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먼저 외출하며, 있다가 외출할 때 모아둔 종이상자를 버려달라고 내게 말했다.
몇 시간 뒤 나는 외출했다가 돌아와 옷을 빨래통에 넣으며,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자들을 보고 그제야 내가 뭘 잊었는지 떠올린다.
가끔 아내는 할 일을 맨날 까먹는다며 놀리지만, 내향감각(Si)이 열등기능인 내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학교 다닐 때 우산을 몇 개나 잃어버렸는지 모르는 나를, 열등기능은 아직도 괴롭힌다. 아마 평생 그럴 것이다.
같은 이유로 ENTP와 ENFP 중 많은 사람들은, 의식해서 신경 쓰지 않으면 방금 집을 나가며 인사를 나눈 가족이 무슨 옷을 입고 나갔는지도 알아채기 어려워하곤 한다.
물론 반대로 Si가 주기능인 ISFJ, ISTJ에게, 의식하지 않아도 그런 것쯤은 쉽게 눈에 띈다.
주기능과 열등기능의 차이로부터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양상이다.
그러면 ENFP, ENTP에게 감각을 활용할 일이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주 문제를 마주하는 만큼, 가령 꼼꼼하게 청소하기, 공과금 납부하기, 잊지 말고 쓰레기 버리기 등 일상의 소소하면서도 꼭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는 일(Si)은 늘 이들에게 괴로운 숙제다.
바로 이럴 때 8차기능이 필요하다. 8차기능은 열등기능과 방향이 반대다. 방향만 다르기 때문에 열등기능을 보완하거나 대체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신경 써서 분리수거함을 들여다 보고 페트병을 버리러 가는(Si) 대신, 분리수거함을 아예 현관에 두어 감각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식(Se)하도록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들에게 주요한 문제는 분리수거를 못하는 게 아니라,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많은 이들은 이 8차기능의 필요성을 떠올리기 이전에, 이미 8차기능을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