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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l 20. 2021

공부는 왜 해야 할까?

공부가 시간낭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울 때

 공부의 사전적 의미는 상당히 넓고 포괄적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강제적인, 학문적인 공부 -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그중에서도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예절이나 규범 따위는 제외한, 분명 많은 학생들과 한때 학생이었을 많은 사람들이 지긋지긋하게 느꼈을 - 수학, 과학, 영어 등의 공부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 '도움이 될까?'라면, 좀 더 좁혀 '나에게 도움이 될까?'라면, 공부의 목적 역시 같은 관점에서 접근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조금은 계산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현실적이고 납득이 쉽게 갈 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니까.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면, 그 이유를 이해하는 데에는 조금은 저차원적인 생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유는 간단히, 공부를 하는 시기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시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공부가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전적으로 어떤 인생을 사느냐에 달려있다. 이 말은,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모르면 알 수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되뇔 시기에 놓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수로 그걸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마지못해 공부를 하며 견뎌내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이것 봐! 내가 했던 공부가 결국 아무 도움도 되지 않잖아!'라고 되뇌며, 그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들이 실제로도 시간낭비였다는 것을 떠올리며 대한민국의 비효율적인 교육시스템 따위를 비난하게 될지 모른다.


 여기까지의 흐름에 문제가 없다면, 공부가 시간낭비일 확률이 지극히 높다는 것은 사실로 들린다. 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내용들을 기억하고, 실생활에 활용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결국 도움이 되지도 않고 살아감에 있어 지장도 없을 그런 내용들을 배우는 데에 강제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건 당연히 불합리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공부 따위는 집어치우고 살고 싶다. 그렇다면 뭘 하고 살 것인가? 더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돈을 벌어먹고 살 것인가?(이미 재산이 너무 많아 평생 돈을 벌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겠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질문일 거다.) 우리는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그 시간을 결국 뭔가를 하는 데 사용해야 하고, 그렇게 사용된 시간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 시간낭비가 아닐 것이란 보장은 - 공부와 마찬가지로 - 어디에도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 혹자는 공부는 하기 싫고, 좋아하는 걸 노력하며 그걸로 성공해서 돈을 벌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논점을 벗어난 생각이다.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 있으리란 보장 역시 없는 건 마찬가지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다 해도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겠다'라는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러한 생각을 정말 끝까지 잘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거다.


 그래서 내린 나의 결론은, 뭘 해야 할지 확신하기 어려운 학생에게 공부는 일종의 보험이 되어준다는 거다. 공부란 범용성이 높은, 사회적으로 '어떤 학문이 필요한지'에 대한 결과물들을 배우고 익히는 거니까. 물론 그럼에도 공부가 시간낭비가 될 수 있기에 하기 싫고, 대신 '다른 무언가'가 하고 싶은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나는 전적으로 존중한다. 다만, 그 무언가 역시 공부와 마찬가지로 시간낭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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