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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l 29. 2021

감정은 이해할 수 있는 걸까?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질문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원리와 이치를 깨닫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지 자체를 확신할 수 없다고 믿고 있기에.


그럼에도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닐 거다. 최초의 접근이 잘못되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지금보다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면 나름의 답을 찾은 것으로 볼 수 있을 테니까. 시도의 끝에서 결국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는 실패할지라도, 감정의 본질에 다가갈 수는 있다는 거다.



아내와의 연애시절 감정은 부단히도 나를 괴롭혔다. 갈등의 대부분은 아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내가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던 아내에게 '왜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데?' 라는 질문을 했고, 대답을 듣고는 '왜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의 반복 속에서 어떤 모순을 발견한 것이 내게 깨달음을 줬다.


그것은 그렇게 머리로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내 감정 역시 머리와는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다. 그 감정이 나에 대한 실망인지, 아내에 대한 미안함인지, 단순한 후회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이 무엇이든 '아내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음에도 왜 스스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의 감정이 나를 괴롭힌다고 수없이 생각했지만, 사실 나를 괴롭히던 건 아내의 감정이 아니라 나의 감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그만두었던 것 같다.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모순을 발견했기에. '왜 그런 감정을 느낄까?' 라는 문제에 대해, 나는 아내의 감정뿐 아니라 내 감정에 대해서도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감정을 '느낀다'는 표현 속에서도 감정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분노를 느낀 뒤 그 분노를 삭이려 노력하여 실제로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분노 자체를 느끼지 않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때때로 감정이 격해지면 흘러나오는 눈물 역시 마찬가지다. 흘리고자 흘리는 것도, 안 흘리려 노력한다고 안 흘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터져 나온다. 감정은 그 주체자마저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감정이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내 생각에, 감정은 이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기 쉽지는 않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가 한다. 그 다른 방법이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이 쓸모없는 노력이 될 수도 있으며, 이해보다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역설적으로 감정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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