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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l 31. 2021

포기

포기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소망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면 포기하는 방법 따위는 몰라도 된다. 하지만 누구도 그럴 수는 없기에, 포기하지 않는 방법뿐 아니라 현명하게 포기하는 방법 역시 중요하고, 또 가치가 있다.


포기라는 단어에서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누군가 포기를 권하면 1차적으로는 거부감이 든다. 마음속으로 포기는 잘못된 행동이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는 선입견을 조금씩은 갖게 된다. 그리하여 포기라는 행위 자체가 평가절하된다.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사람의 용기를 보편적으로는 높게 평가한다. 분명 그런 태도와 자세는 존중받을 만 하지만, 포기하는 데에도 만만치 않은, 때로는 포기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고, 또 포기를 통해 더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새겨보면 어떨까 싶다.


결국 그 갈림길에서, 포기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더 큰지 아닌지를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꿈을 포기하는 대신 더 간절히 원하던 다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거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의 끈을 놓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 끈을 몇 개 놓음으로써 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단히 다질 수도 있다.


어니스트 섀클턴이라는 영국의 탐험가가 있었다. 이 사람은 인류 최초로 남극점을 정복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있었음에도,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 때문에 정복을 포기했다. 이후에는 남극횡단에 도전했다가 여러 가지 어려움이 겹쳐 이전과 똑같이 죽음의 위험 때문에 횡단을 포기하고, 대신 무사히 생환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자신과 대원들 모두를 기적적으로 생환시켰다. 그리고 결국 위대한 실패자라는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신중한 판단 끝에 현명한 포기를 선택한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성취할 수 있음에도 쉽게 포기하는 행위를 무작정 변호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포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순간도 분명 있다는 얘기다. 지금이 그 순간인지에 대한 판단은 매우 어렵겠지만, 포기의 미학을 이해할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그 난이도는 낮아지고, 그만큼 삶의 완성도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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