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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ug 17. 2021

[소설] 서툰 이별

사랑은 서투름으로 완성된다

  오늘도 우리는 다퉜다. 사실 갈등이 불거진 지금에 와서는 다툰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는데, 우리가 그 이유를 따라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 것보다, 그저 상대방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서로에게 각인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자의 내용들은 대화보다는 공격에 가까웠고, 표현은 신랄했으며, 의도는 지저분했다.

  돌이켜보면 장거리 연애를 하던 근래의 8개월 남짓에, 우리는 꽤 자주 힘에 부쳐 했던 것 같다. 나는 첫 직장에서 업무로 인해 나름의 스트레스와 사람들과의 만남이 필요했고, 여자 친구 역시 대학원에서 적응을 하며 몸과 마음고생이 심한 상황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던 연인과 멀어지게 되면서 서로의 마음 역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연애를 하던 순간들에, 우리는 보통 서툴렀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그것을 표현으로 승화시키는 데에도, 그리고 다투던 때조차. 문제는 서툴면서도 서투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과,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서투름에도 더 이상 서투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었다는 것, 그리하여 사랑이 그 자체로 빛날 기회를 잃어버린 채 서툴게만 드러났다는 데 있었다.

  변명을 하자면, 우리는 이전까지 서로의 사랑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적어도 나는 그랬고, 여자 친구를 너무나 잘 알았기에 그녀가 나의 사랑을 의심한 적 역시 없음을 안다. 우리가 의심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행복이었다. 사랑한다고 무조건 행복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풀리기 힘든 난제의 답을 내릴 때마저 우리는 서툴렀고, 그렇게 서서히, 하지만 분명히 우리의 관계는 종말을 향해 갔다.

  문자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회사 기숙사에 룸메이트와 함께 살던 나는 전화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고, 사실 전화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또한 전화를 한다고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상처를 주는 말들이 오갔고, 실제로 상처를 주고받았으며, 이별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비겁하게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말이 상대방으로부터 나오길 기다렸고, 그렇게 공통의 접점에 다다른 순간, 서로의 목소리 한 번 들어보지 않은 채, 우리는 사랑을 의심하며, 이별을 택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언젠가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였는지, 생각만큼 슬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참기 힘든 공허감과 허무함이 조용하고도 무섭게 짓눌러왔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뜨고 가만히 상황을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방금 전 여자 친구가 된 사람과의 대화창을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그 어떤 말이라도 다시 해줄 것만 같았고, 그 말을 바로 확인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후회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과해온다면 못 이긴 척 받아주리라는 자못 주제넘고도 건방진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하고 싶은 충동 역시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비겁하기만 했던 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결국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으며, 참아왔던 피로가 몰려올 때쯤 나는 겨우 잠이 들었고, 그렇게 우리의 사랑 역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내 생에 가장 잔인한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회사의 친한 사람들은 모두 나의 이별을 알게 됐고, 지방에 있던 나는 그대로 이곳에 머물렀다. 어떻게 하루를 보냈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배고파서 먹고, 살기 위해 먹었다. 이제는 비어있는 왼손 약지 손가락의 반지 자국을 만지작거리기도 했고,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대화창을 자꾸만 살폈다. 나와 함께 찍었던 프로필 사진은 밋밋하지만 진한 검은색 바탕으로 바뀌어 있었고, 문구는 평소 좋아했던 검정치마의 노래 Antifreeze의 가사인,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로 바뀌어 있었다. 함께 크리스마스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기숙사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도 떠올랐으며, 그제야 나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몹시 울었다.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를 쓰던 어느 날 어떻게 지내냐는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고, 똑같이 안부를 물었으며, 이별의 순간에 이르러 우리는 잠깐이나마 서로의 사랑을 의심했었고, 자신의 마음을 의심했으며,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은 우습게도,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서툴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우리는 이별이, 우리의 사랑이 서투르지 않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오만함의 대가임을 깨달았고, 그래서 서투르다는 사실을 깊이 인정하고 사랑 앞에 겸손해지기로 했으며, 그 사실을 잊을 때 다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느꼈다는 점이다.

  이후로 우리의 관계는 눈에 띄게 좋아졌고, 사랑은 더욱 커졌으며, 몇 년 뒤에는 결국 결실을 맺었지만, 그럼에도 두 번 다시 오만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결실 역시 사랑의 종착지가 아닌 또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끝나지 않는 사랑에는 끝나지 않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결코 능숙함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투름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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