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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ug 21. 2021

본모습을 드러내고 싶을 적에

본모습과 가면 사이에서

본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행위는 관계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이론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행위입니다. 누군가의 의중을 짐작할 필요도 없고, 오해의 소지도 없으며, 따라서 시간과 노력 등, 에너지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죠.


반면 가면을 많이 쓰고 있을수록 관계는 복잡해지고, 서로에게 비효율적인 행위를 요구하게 됩니다. 어디부터가 본모습이고 가면인지를 알기 어렵기에, 그를 위한 판단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죠. 게다가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판단이 틀리는 경우 또한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면을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금은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본모습을 내보인다는 것은 자신을 아무런 보호수단 없이 치열한 싸움의 한복판으로 내모는 행위와 같기 때문입니다. 사회 속에서 관계의 유지가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일정 부분 감춘 채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했듯 에너지의 비효율적 소비 때문에, 우리는 가면을 쓰는 행위, 가면을  상대방을 마주하는 행위에 쉽게 지치곤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서로가 모든 가면을 내려놓고, 본모습을 마주   있는 관계를 갈망합니다. 지친 자신을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해주며,  상대방 역시 자신을 똑같은 존재로 여길  있는 조금은 특별한 관계를요.


그래서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면을 조금씩 조금씩 벗어놓습니다. 그러면서 상대방 역시 가면을 벗어놓고 있음을 확인하고, 또 하나 살짝 벗어봅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 속에서 가면을 계속 벗다 보면, 여전히 모든 가면을 항상 벗어놓기는 어려워도, 본모습을 보여도 불안하지 않고, 오히려 안심이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내놓은 본모습이 결국 자신에게 상처가 되어 돌아올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가면을 잘못 내려놓았을 수도 있고, 관계와 상황의 변화, 그리고 사람의 변화가 일어났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런 때가 있다는 사실이 특별한 관계가 존재할 수 없음을 뒷받침해주지는 못 합니다.


서로가 편안한 마음으로, 본모습을 주저하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관계가 있다면 분명 큰 행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게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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