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어렸을 적 커다란 알사탕 하나를 까서 입 안에 넣으면 참으로 행복했었다.
그런데 지금 똑같이 알사탕을 까서 입 안에 넣으면 그때만큼 행복하진 않다.
이제는 알사탕 정도의 자극으로는 쉽게 행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지금의 나는 옛날의 나보다 행복의 역치가 높아진 걸까?
물론 행복이란 꼭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요소들이 많아지면서,
알사탕이 주는 행복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게 됐을 것이다.
또한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과거 알사탕이 주던 행복 역시 미화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알사탕 정도가 아닌 더 높은 기준을 충족해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만을 기준으로 생각해 볼 때,
경험이 없던 어린 시절의 나는 행복을 더 쉽고 효율적으로 느낄 수 있던 건 아닐까?
극단적으로 보면, 행복을 느끼기에 내가 쌓아온 경험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 한 건 아닐까?
그렇게 행복의 역치를 계속 높여가다 보면, 어느 순간 행복을 느끼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큰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행복을 느끼는 요소를 계속 찾아가는 것은 인생의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의 행복에만 계속 안주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 더 큰 행복을 찾기 위해 행복의 역치를 계속 높여가야 하는 불합리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그래서 행복을 느끼는 요소는 많은 부분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인정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행복의 역치란 결코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에 맞게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주어진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 거다.
주어진 것에 만족할 수 없다면, 그를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 행복일 수 있을 거다.
또한 만족할 수 없는 과정 속에서도,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 역치를 함부로 높이지는 말자.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불행해질 수 있으니까.
결국 나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질문의 답은, 행복의 역치를 얼마나 적절히 정하느냐가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