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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Sep 27. 2021

글쓰기에 대한 지론

글쓰기에 대한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중요한 지론 중 하나는, 글이 안 써질 때에는 굳이 억지로 쓰지 않는 게 좋다는 거다.


이러한 지론을 갖고 있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효율의 문제다. 써지지 않는 글을 붙들고서 머리를 싸매 봐야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보내는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분명 나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행위이지만, 그렇다고 또 다른 할 일이 없는 건 결코 아니다.


둘째는 의지의 문제다. 글이란 자신의 생각을 외부로 표현하는 수단의 하나다. 그러므로 잘 표현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은 그것을 외부로 표출할 의지가 별로 없거나, 적어도 아직은 표출하고 싶을 정도로 생각이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럴 때 글이 안 써지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셋째는 완성도의 문제다. 글의 완성도란 대부분 ‘이 글이 내 생각과 의도를 얼마나 잘 나타내고 있는지’가 좌우하는데, 억지로 글을 써 내려가며 이어 붙여봐야 그런 글이 나를 잘 반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론은 결국 무엇을 뜻하는가? 역으로, 글이 잘 써질 때에는 다른 행동을 제쳐 놓고 집중할 필요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노파심에 한마디 보태자면, ‘글이 잘 써진다’는 건 ‘문맥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유려한 표현이 곁들여져 있으며 누구의 마음에나 와닿는 글이 결과물로 잘 드러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저 내 생각이 글로 잘 옮겨진다는 단순한 의미이다.


그래서 가끔은 슬럼프가 온 것처럼 다른 행위를 통해 쾌락을 찾다가도, 어떤 날은 강박적으로 글을 써내려 가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주기는 매우 불규칙해서, 때로는 하루 종일 글이 써지지 않다가 갑자기 세 시간쯤 글이 잘 써지기도 하고, 또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글쓰기를 향한 열망만은 확실하기에, 나의 의식 역시 많은 순간 글쓰기를 향해 있고, 그래서 언젠가 글이 잘 써지는 순간이 오면 그것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즉 나는 글이 안 써지는 순간에도, 잘 써지는 순간이 다시 도래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다행히 글이란 항상 생각의 정리를 필요로 한다. 즉, 내게 있어 글쓰기의 과정은 크게 발상 - 생각의 정리 - 글쓰기로 나뉘어 있기에, 마지막 단계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도 발상과 생각의 정리는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끄적여 놓은 것들은 서랍 속에서 나를 기다리게 되며, 결국 내가 할 일은, 적당한 순간이 언제인지를 알아채고 그것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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