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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Feb 03. 2022

걸음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따라 걸음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보고자 한다. 하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걸음이요, 다른 하나는 따로 정해진 목적지 없이 그저 돌아다니는 수단으로써의 걸음이다. 그리고 이렇게 얼핏 별 것 아닌 구분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걸음은 목적지 도달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에너지 소모가 심한 원시적인 수단이 된다. 장점이라고는 실상 저렴한 비용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기 때문에 기피하고 싶어지는 수단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오랜 시간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다. 예를 들어 비교하자면, 자가용을 타고 있다면 아무 곳에나 함부로 머무르기 어려운 것이다. 걸어 가다가 풍경 속에 녹아들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하나가 되어 볼 수도 있다. 자신의 눈에 풍경들을 각인시켜 깊은 인상을 남길 수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도 있다. 이는 더 효율적인 이동수단을 선택할 때에는 얻기 어려운, 걸음만이 갖는 분명한 장점들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둘의 차이가 명확하지는 않다. 목적지를 정했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 후자의 방법을 택해 장점을 취할 수도 있고, 목적지가 없어도 후자의 장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전자와 다를 바 없는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걸음의 구분은 활용방법과는 별개로, 걸음의 장단점을 얼마나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지에도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상 걸음의 장단점은 누구나, 언제나 마음먹기에 따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장점을 취할 수 있을 때 걸음을 선택한다면 충분히 훌륭한 이동수단이 된다. 걸음의 즐거움에 취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즐거움의 크기가 더욱 커지면 어디든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익숙한 길 위에서는 편안함과 여유를, 새로운 길 위에서는 설렘과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걸음에는 항상 나름의 즐거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런 걸음으로 정처 없이 헤매고도 싶다. 어디로도 향하지 않지만 어디로든 향할 수 있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머무를 수 있는, 무엇보다 느려도 무엇보다 여유로운, 그런 걸음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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