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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25. 2022

좋은 사람, 싫은 사람

나는 타인들과 접촉을 끊은 상태가 제법 길게 지속된다 해도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타입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꺼리지도 않는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위한 좋은 시간이 될 수 있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든 즐거운 시간이 되어 준다. 아마도 이런 내 성향은 죽을 때까지 변함없을 것 같다.


자못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런 내 모습에 대해 골똘히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긴 고민의 시간에 비해 단순했다. 그저 좋은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행동으로 옮기고, 싫어하는 사람과의 만남에는 굳이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는 견해와 태도가 확고하다는 것이었다. 진실이 꼭 복잡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타인에 대해 내린 판단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엄밀히는, 바뀔 만한 기회조차 잘 주지 않는다. 그런 이들과는 애초에 엮이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태도가 지나친 선입견에 가깝다면, 나는 차라리 선입견을 가진 편이라고 인정해 버리고 말 것이다. 나의 판단을 그만큼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동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차피 사람은 다르다. 그렇게 다른 만큼 좋은 사람의 기준도 다르다. 그래서 나는 타인이 타인에게 내린 판단을 참고는 할지언정, 결코 그것만으로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반대로, 나의 판단이 타인의 판단에 의해 잘 바뀌지도 않는다. 따라서 나의 인간관계는 제법 극단적이다. 중간은 드물다. 색으로 따지면 흰색 아니면 검은색이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건,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을 누군가는 싫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하기도 한다. 그것을 쉽게 인정하면 정신건강에 이롭다. 인간관계에서의 스트레스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과도하게 노력할 때 불현듯 찾아온다. 그 노력에 따르는 고난을 무한히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결국 인간관계로부터 비롯되는 대부분의 문제는 솔직함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호불호의 표현,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에 대한 표현, 그리고 좋다, 싫다고 표현하는 태도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솔직해 보이지 않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말할 때, 사실은 그 말이 별로 대단한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이해해주길 바란다면 너무 이기적인 걸까? 나는 정말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런 내 태도가 받아들여지기에 세상은 아직 지나치게 따뜻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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