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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25. 2022

분리불안


존재에 대한 사랑은, 그 사랑의 당사자로 하여금 존재와의 거리를 가깝게 유지하길 절실히 원하게 만든다. 항상 먼 거리에 있음에도 일말의 불안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사랑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런데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다는 사실만으로 사랑이 충족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랑은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거리 역시 가깝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리감이 느껴질 때, 사람들은 지금껏 가꿔온 사랑이 자신만의 것은 아니었을까 불안해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존재와 언제까지나 가깝기를 갈구하는 마음은 부단하고 자연스럽다. 불안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느낀 뒤에는 다시 불안함이 찾아올까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온전히 머물러 있는 사랑을 굳이 붙잡아두려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때로는 순수한 불안의 발로처럼, 때로는 과도한 불안의 집착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언젠가 사라지고 무한히 멀어진다. 즉 모든 사랑의 종착역은 존재와의 이별이다. 이렇게 끝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슬프게도 들리지만, 정해져 있기에 오히려 담담하게도 들린다. 막을 수 없기에, 막으려 애쓸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그 사실은 충분히 무거운 불안을 전한다. 그렇게 이별할 걸 뻔히 알면서도 불안해질 정도로 깊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불안이 찾아올 때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그 사랑에 더 깊은 믿음을 보낼 수 있다. 불안이 곧 사랑의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사랑하는 존재가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기적이게도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면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어쩌면 사랑의 본질은 불안일지도 모른다. 떨어지길 원치 않는 분리불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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