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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24. 2022

아무 일이나 하면 아무 일이나 일어난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뜻하는 바는 제법 명백하다. 변화나 성취를 바란다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생각에 멈춰 있으면 삶 또한 멈춰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한 이 말은, 가까이는 행동력의 중요성부터 멀게는 결단력, 의지력의 중요성까지 논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들으면 당연하지만, 평소에는 주목하기 어려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상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운동을 하거나,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등의 제법 건설적인 일들을 제외하더라도 그렇다. 그저 여흥을 위해 취미를 즐기거나, 휴식을 위해 수면을 취하는 행위 역시 나름의 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여겨졌을 뿐, 우리는 이미 행위의 결과를 마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특정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인식하기 전에 이미 어떤 행위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실제로는 무엇을 뜻하는지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 글쓰기란 하루하루 본업에 찌들어 에너지를 잃어 가는 자신에게 다시금 일터로 나아갈 활력소가 되어 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이에게 누군가 '작가가 될 것도 아닌데 글을 써서 뭐해?' 라고 자못 바보 같은 물음을 던진다면 그에 대한 답변은 글쓰기는 다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한 현명한 행위의 일환이라는 수준에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글쓰기가 얼핏 무의미한 행위로 비치고 있을지 몰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반면, 원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성공인 사람에게 있어 글쓰기는 취미 수준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고, 또 머물러서도 곤란할 것이다. 그런 이에게는 오히려 본업이나 또 다른 취미생활이 글쓰기라는 행위를 위한 발판으로 기능하게 마련이다. 글쓰기를 통해 활력소를 얻는다는 측면에서 행위의 정의 자체는 비슷할지 몰라도, 행위의 의미로서는 사람마다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의미를 분명히 하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일하기 위해 노는지, 놀기 위해 일하는지, 혹은 놀기 위해 노는지 역시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뚜렷한 방향만 설정되어 있다면 늦잠을 자고 일어나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쉬어도 문제가 될 건 없다. 반면 방향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열심히 일한다 해도 정작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일했던 것인지 몰라 뒤늦게 후회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행위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삶의 목표, 자아의 실현을 위한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수 없는 노릇이기에, 그렇게 뭔가를 했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분명 그 이유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이나 한다면 아무 일이나 일어난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원한다면, 그런 삶을 살고자 한다면, 자신에게 있어 아무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 뒤에야 이 말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고, 행동력의 중요성도 한 걸음 더 다가오게 된다. 따라서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 그래서 행동력을 상실했을 때에도 내키는 대로 함부로 발걸음을 옮기지 말고, 맞는 방향이 정확히 어디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 우리는 뭔가를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뭔가를 해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뭔가를 하는 것보다, 그 뭔가가 어떤 일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 그렇게 일어날 일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일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행동력은 거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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