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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21. 2021

출산과 창작의 고통

2017년에서 이듬해로 넘어가는 겨울, 공모전 응모를 위해 처음으로 소설을 썼던 적이 있다. 글을 1차로 완성하고 퇴고를 거치면서 나의 마음은 꿈에 부풀었다. 나는 원래 그랬다. 자기객관화가 부족한 것으로도 모자라 언제나처럼 대책 없이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이메일로 원고를 보낼 때까지도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당선이 된 것처럼 즐거웠다.


전화가 오지 않던 발표일, 심사위원들의 작품 보는 눈을 의심하며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낙선된 작품의 작품성을 여전히 의심하지 않은 채 들여다보지 않다가 글에 대한 열망이 다시 불타오를 때쯤 생각을 바꿨다. 분명 혼자서 이전에 쓴 소설을 읽어 내려가고 있는데도 마치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개되어 있는 것처럼 얼굴이 새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감히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의, 아마도 종이의 형태로 존재했다면 당장에 찢어버렸을 수준 낮은 글이었다. 응모하기 전 아내를 포함해 몇몇 지인들에게 보여줄 의향이 있었지만 모종의 사유로 결국 실행하지 못했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여겨졌다. 심사위원들의 눈은 정확했다. 장담하건대, 그들은 채 몇 문장 읽어보지 않고도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너무나 부끄러워 한숨이 나올 정도의 글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한 번 더 낙관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나의 글을 어느 정도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자부심을 느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나였지만 어쨌든 그런 나를 한 번은 뛰어넘은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리고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한동안 접고 있다가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뒹굴거리던 중 한 카페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뒤돌아보니 그게 벌써 1년도 더 전의 일이다. 글을 잘 쓰는 회원을 알게 되어 가르침을 청해 받기도 하고, 수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계속 글을 썼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내 글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물론 글에 주목한 것인지, 나라는 사람에 주목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들이 관심종자에게 관심을 아끼지 않는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나를 지배했고 한참 동안 그 열망에 몸을 맡겼다.


감사하게도 어떤 글은 상당한 조회수와 호의적인 반응을 남기기도 했다. 돌이켜봐도 너무나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쓰기 싫은 글을 억지로 썼던 것까지는 아니지만 글에 대한 열망을 넘어 순전히 그런 독자들의 반응 때문에 작성된 글도 많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기도 한데,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은 타인들을 위해 존재하고, 존재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한 글은 일기장이나 블로그 따위에 비밀글로 작성하면 될 일이니까. 그래서 마치 카페 내의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해 연재하듯 글을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게 강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쯤 카페와 카페 활동, 그리고 내 글에 대한 회의감이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고민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독자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내 글을 써보기로 했다. '거의' 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그 와중에 부끄럽게도 '일말의 기대감' 을 완전히 놓지는 못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내가 쌓아 올린 것들은 빠르게 소멸했다. 그럼에도 나는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예상했던 반응이었기도 하고, 호의적인 반응이 줄어든 대신 스스로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법정 스님이 말한 무소유의 철학에 따라 홀가분해지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그 과정과 그에 따른 생각과 감정을 얼마간 거치고 나서야 오롯이 내가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카페 활동을 그만둘 때쯤 그동안 내가 남긴 글들을 수십 개 정도 읽어 보았다. 처음으로 썼던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다시 적지 않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우습게도 글을 쓸 때에는 부끄러움은커녕 오히려 자부심을 느꼈던 글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예전처럼 나를 한 번 더 뛰어넘은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자신감으로 정말로 내가 쓰고 싶었던 소설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공모전을 모아놓은 사이트에 방문하여 마감 일정을 확인하고 소설을 하나하나 써 내려갔다. 쉽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예전보다는 수월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나는 공모전에 떨어졌고, 또 심사위원의 눈을 의심했고, 공모전에 제출한 작품들을 다시 보며 또 부끄러워했다. 그렇게 실패했기에 그렇게 더 열심히 퇴고를 했는데 그렇게 또 부끄럽다. 이제는 나를 한 번 더 뛰어넘었다고 생각하지도 못 하게 됐다. 글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 확실히 아직도 부족하다. 자기애가 심각하게 강한 나지만 글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지기로 했다.


창작의 고통은 산고(産苦)와 같다는 말이 있다. 아기를 품고 낳아 본 적도 없으면서 감히 가져다 쓰기에는 세상의 모든 위대한 어머니들에게 참으로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다만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고통도 상당하다는 정도로 너그럽게 이해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와 나는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나의 고통은 아내의 고통에 비견될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근 몇 달 동안은 퇴근 후 마음 편히 쉰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틈만 나면 글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하고, 그 결과물을 텍스트로 옮겼다. 물론 나의 선택이었기에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었고, 그로 인해 이 중요한 시기에 아내에게 소홀했던 부분도 분명 있어 부끄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 자신을 위해서는 참으로 보람찬 시간들이었음을 숨기고 싶지는 않다.


너무나 뜻깊게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경험 중 하나라는 아버지가 되는 일을 겪을 날이 머지않았다. 나는 그날부터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일기를 작성하기로 했다. 또한 바빠질 나날 중에도 공모전에 계속 도전할 생각이다. 무계획적인 나를 계획적으로, 꼼꼼하지 않은 나를 세세하게, 그리고 낙관적이던 나를 비관적으로 만들어 준 창작활동을 계속할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찾았다는 확신이 강하게 든다.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는 말을 나는 몹시 좋아한다.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그들의 행위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언젠가 내게 비가 내리면 나는 이 글을 다시 읽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응원을 보내준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걸어와 준 내게 한없이 감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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