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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21. 2021

사랑은 미움보다 어렵다

드물긴 하지만 한 가득의 미움에 얼마쯤의 사랑이 섞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감정의 밑바탕에 결국은 미움이 깔려 있음을 쉽게 간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사랑이 잠시 돌아보고 옅은 미소를 지어줄 정도의 가벼운 감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사랑에 미움이 섞이는 경우는 훨씬 빈번함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때 느껴지는 감정의 무게추를 사랑보다 미움에 훨씬 더 가까이 두곤 한다. 마치 단 한 방울만큼의 미움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바꿔버리기라도 한듯 험한 인상을 쓰기도,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미움의 고유한 특징이기라도 한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랑에 미움이 섞여들 때에는 감정에 대한 더욱 세심하고 정갈한 판단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때로 공들여 쌓은 사랑도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지기도 한다.


익숙해진 감정은 쉽게 무뎌진다는 가설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서두의 예제가 그것을 증명한다. 미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흔하다.


어쩌면 해답은 감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운 사람과의 거리는 보통 멀리 있다. 그래서 그 거리를 유지하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에너지가 필요치 않다. 그저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 구태여 만나지 않고, 연락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는 그렇지 않다. 그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연락하고, 약속을 잡고, 만나고, 대화하고,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신경 쓰는 것과 신경 쓰지 않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쉬운지는 자명하다.


그래서 사랑은 미움보다 어렵다. 미워하긴 쉬워도 사랑하긴 어렵다. 미워하는 사람을 계속 미워하긴 쉽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사랑하긴 더 어렵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사랑보다 많은 미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만큼 사랑은 미움보다 소중하다. 이뤄지고, 유지하기 쉽지 않기에, 그만큼 어렵기에 더 가치가 있다. 드라마 같은 미움은 없어도 영화 같은 사랑은 있다. 겪어 보지 않아도 역경을 견뎌낸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사랑이 어려운가? 괜찮다. 모두들 사랑이 더 어렵다 느끼니까. 사랑이 쉬운가? 축하한다. 다만 그렇게 쉬운 사랑도 언젠가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실에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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