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Jan 03. 2022

출발선에 선 생명들에게

인생이라는 달리기의 출발 신호가 울리던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언젠가부터 자신이 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행동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되었다는 사실, 준비 없이 길바닥 위에 내던져졌다는 사실이 인생을 더욱 고달프게 만든다. 그럼에도 공평하지도 않은 그 험난하고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계속 달려 나가야 한다.


미처 준비를 마치지 못한 생명에게도 그 길은 무자비하다.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또 넘어지고, 주저앉아 있기에는 앞서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다시 일어나 달려 보지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이 엄습해온다. 나의 길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때로는 맞는 길인 지조차 헷갈린다. 불확실한 길 위에서 희미한 목적지를 향해 불완전한 삶을 살아간다. 뛰기 위해 뛰고, 살기 위해 산다. 슬프고도 아픈 숙명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무릇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선택지는 정해져 있다는 거다. 무거운 발걸음을 애써 옮기고, 터질 것 같은 숨을 몰아쉬며 계속 달려야 한다. 그래서 삶이 죽음보다 더 잔인하게 다가올 때, 다시 달려갈 용기를 줄 힘차게 펄럭이는 깃발들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생의 또 다른 출발점이자 목적지와도 같다. 인생의 목적은 완주가 아니라 깃발의 발견이다. 그 깃발은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자신의 재능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사소하게 허기를 채워주던 말 한마디, 무심하게 위로를 건네던 손길일 수도 있다.


깃발을 찾은 이들은 희망을 전한다. 그 아무리 고된 앞날이 예견되어 있어도 그저 마음 깊이 응원을 보내고, 그렇게 고된 인생 속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찾는다면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하게 될 날이 분명히 찾아오리라 말한다. 슬프게 눈물짓던 시간들이 사실은 즐겁게 웃음 짓던 순간들과 함께였음을 알고 있기에. 힘들었던 시절 속에도 행복한 나날들이 떠오르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추운 날이 지나면 따뜻한 날이 성큼 다가오던 기억이 마치 봄날의 꽃처럼 선명하게 피어올라 미풍에 실려오는 풀내음처럼 그들을 자극하여 희망이라는 열매를 맺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기에.


그리고 기어이 그날을 맞이한 이들은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어느새 길고 긴 날들의 반환점을 돌아 또 다른 새로운 생명들에게 응원을 보낼 준비를 마치게 된다. 인생의 길은 그렇게 돌고 돈다. 그 길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져 매몰찬 아름다움을 전한다. 그 속에서 인생이란 때로는 가혹하리만치 길고, 때로는 눈물 날만큼 짧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새롭게 출발선에 선 새 생명들에게 미리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애틋한 진실을 언젠가 마주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은 미움보다 어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