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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03. 2022

놓고 온 것

흘러간 과거가 문득 마음을 잡아채고 뒤흔든다 해도, 그때의 우리가 꼭 고된 삶에 허덕이고 있는 건 아니다. 객관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보다 나은 현재를 살아간다. 그것을 부정하는 많은 경우에, 과거가 종종 미화된다는 사실은 놀라우리만큼 쉽게 잊힌다.


그리하여 추억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간단하게, 과거에 뭔가 놓고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놓고 온 것을 절실히 원할 때, 그것이 놓여 있던 과거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움이란 그렇게 되돌릴 수 없는,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을 향한 갈망이다.


어쩌면 그리움이란 그저 무지에서 오는 순수함으로부터 기인하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잊어버리지 않는 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기에, 순수함을 되돌리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그 한계의 경계면에 서서 우리는 일종의 가벼운 후회와 같은 감정을 갖는 것이다.


반대로 알고는 있었지만 잊어버린, 망각에서 오는 자책감이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익숙함이라는 미명 하에 무거웠던 것이 가벼워질 때, 가까웠던 것이 멀어질 때, 그토록 생생했던 느낌이 옅어질 때 이제는 둔해진 머리와 가슴을 탓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놓고 온 것은 자기 자신이며, 그리워하는 것은 변하기 전 자신의 모습이다. 낙엽 지던 나무 밑에 서 있던 추억을 그릴 때, 우리는 함께 떨어지며 위로해주던 낙엽이 아니라 그 흔하고 숱한 낙엽에도 위로받을 수 있었던 자신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제는 낙엽들 아래에 설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서 있어도 때 묻고 찌들어 결코 이전처럼 위로받지 못할 만큼 자신이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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