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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06. 2022

무기력감이 찾아올 때

무기력감을 느끼게 되는 원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뭘 해도 안 될 것 같을 때, 그저 시간낭비라 느껴질 때, 그래서 행위로부터 그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연스레 행위의 동기와 의지를 잃어간다.


심한 경우에는 더 나아가 삶 자체에서 무기력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즉, 삶이라는 행위로부터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반복되는 무기력감을 결코 좌시해선 안 되는 이유이자, 결국 무기력감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런데 무기력감은 어디서 올까? 그 근원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발상지는 바로 결과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행위로부터 오는 결과가 없거나, 그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한참 동떨어져 있거나, 원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되어 하지 않았느니만 못 할 때 우리는 무기력감에 둘러 쌓이고 마는 것이다.


그럼, 무기력감을 불러오는 행위란 어떤 행위들일까? 얼핏 행위의 반복이 무기력감을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하는데,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매일 지겹게 같은 길을 걷더라도 그 길 끝에 원하는 결과물이 있다면 그러한 단순한 반복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그 결과가 자못 사소하더라도 또 다른 길을 열어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면, 그래서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면 역시 감내할 수 있다. 적어도 무기력감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행위의 형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무기력감은 행위의 궁극적인 결과물이 결국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질 때, 보이지 않는 길의 끝에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 때, 더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끝내는 성취할 수 없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할 때 찾아온다. 그토록 열심히 걸어온 길이 결국 막다른 길이었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발걸음이 차차 느려지고 더 이상 앞으로 걸어갈 의미를 잃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무기력감인 것이다.


이러한 무기력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이상주의자에 가깝지만 그렇게 비현실적인 사람은 아니다. 한계란 없으니 용기를 내 그 길을 계속 걸어가라고 말해주고도 싶지만, 안타깝게도 한계란 분명 존재한다는 걸 잘 안다. 그런 길을 계속 걸어가는 건 한 마디로 시간낭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안다.


그렇다고 그만큼 걸어갔는데도 뚜렷한 결과물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그 지점이 곧 한계라고 잘라 말하고 싶지도 않다. 조금만 더 걸으면 성취를 얻을 수 있음에도 어리석게도 포기해 버리는 바보 같은 결과가 야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답은 없겠지만 나는 의미를 찾아내 부여함으로써 무기력감을 이겨내곤 한다. 행위의 결과가 아무것도 바꿔 놓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산가는 빈 손으로 산을 올라갔다가 빈 손으로 내려온다. 정상에서 그 어떤 것도 가지고 내려올 수 없음에도 그저 그곳까지 오르는 데 성공했음을 성취로 여긴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 것은 제삼자가 보기에는 얼핏 무의미한 행위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결코 무의미한 행위가 아니다. 막다른 길에 도달했을 때 실망에 젖어 있기보다는, 지금까지 걸어온 경험이 커다란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 다시 힘을 내 되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결과는 중요하다. 하지만 결과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는 행위는 마치 언젠가 죽어 흙으로 돌아갈, 자명한 결과가 기다리는 삶을 굳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행위와 같다. 행위의 의미, 더 나아가 삶의 의미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무기력감을 극복하고 다시 앞으로 걸어갈 용기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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