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Mar 28. 2022

늙음의 기로에서

동료에게 이직 사실을 알리자 그는 말했다. 원한다고 쉽게 이직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젊어서 좋겠다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긍정적인 답변을 건넬 만큼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저을 만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 출발은 분명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성공 여부는 분명 나이와도 큰 상관이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이가 새로운 선택의 가능성을 붙잡도록 방관하는 건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늙는다는 건 뭘까? 아마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자신감의 결여를 경험한다는 사실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이전에는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던 일들, 도전해볼 만하다 여겨졌던 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때, 그 시선뿐 아니라 시선의 주체인 자신 역시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잔인한 현실과 마주한다.


이 관점에서 젊음과 늙음의 차이를 육체에 국한시키지 않는다면, 그 차이는 성취의 가능성보다는 성취의 가능성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보인다. 역으로 말하면, 이 태도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여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유지해 나간다면, 멀어만 보이는 젊음과 늙음의 간극을 조금은 좁힐 수 있지 않을까?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그 거대한 숫자 앞에 체념할 때, 누군가는 그를 넘어서고자 한다. 현실적인 나이를 마냥 무시하는 것도 현명한 처세는 아니다. 하지만 그 현실을 구태여 붙잡아 매달려 있는 것도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나이에 대한 현실과 이상, 그 중간 어디쯤에 답은 있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더 나은 답은 있다. 그리고 답을 찾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그리하여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늙음의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이미 늙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먹은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만 있다면 충분히 젊다. 언젠가 그 행동력이 쇠할 날은 오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한, 늙음의 경계선을 지나지 않은 채 그 팽팽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어쩌면 눈을 감는 날까지 그저 그 기로에 서 있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동료의 나이가 나보다 적은지, 많은지조차 정확하게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늙음의 기로이자 또 다른 출발선에 서있음을 느꼈다.

작가의 이전글 자신의 장례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