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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11. 2022

나만의 행복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극의 크기를 행복의 역치라고 할 때, 그 역치값은 낮을수록 좋다는 게 내 지론이다. 자그마한 것으로부터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당연히 그만큼 자주 행복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행복들이 언제까지나 자신의 곁에 머무를 거라는 기대를 쉽게 품어서는 곤란하다. 자극은 언젠가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역치를 높이게 마련이며, 결국 행복을 느끼는 빈도는 줄어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행복론은 조금 어려운 대목으로 돌입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긍정적인 자극과 사건을 많이 접하면, 행복의 빈도는 높아지겠지만 행복의 역치값 역시 높아진다. 그렇다고 해서 역치를 낮추기 위해 자극을 줄이면, 그로부터 행복의 빈도 자체도 줄어든다.


나는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혀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행복론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의 역치값을 높이지 않으면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겠다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답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답을 찾기 위해 몇 가지 시도해보는 것들은 있다.


행복의 역치값이 낮아지는 이유는 익숙함에 있다. C라는 행위로부터 행복을 느낀다고 해서 매일 C, C, C가 반복되면 어느 날 C는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리고, 익숙함은 행복감을 조금씩 앗아간다. 소소한 행복이 너무 자주 반복되면 그로부터 얻는 행복감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럴 때는 C 외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행위를 찾아야 한다. C, H, I를 찾은 다음, 가능하면 K까지 찾아본다. C, H, I, C, K, E, N 등으로 일상을 구성해본다. 행복은 반복되지만 익숙함은 줄어들고, 역치값은 훨씬 오래, 어쩌면 죽는 날까지 유지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찾을 수 있는 환경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조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 오히려 그렇기에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결국 찾고 또 찾는 과정이다. 도대체 무엇을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경험해보면서 찾아낼 필요가 있다. 만일 그런 과정 자체로부터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찾다 보면 아직도 세상에는 내가 접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많은 요소들 중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가 없을 리는 없다고 본다.


행복론에 정해진 답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만의 행복론을 수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벽에 막힐 때에는 타인의 생각과 경험을 살짝 엿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만의 행복론도 누군가 엿보길,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길 감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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