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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12. 2022

꼰대 이야기

특히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면, 내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제법 많이 마주친다. 사회적 지위가 사회에 머무르지 않고 개인의 사생활까지 침범할 수 있다고 믿는, 이른바 꼰대들의 행동이 대표적이다.


그런 꼰대를 굳이 둘로 구분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나마 올바른 사람이라면, 그렇게 사생활에 대해서도 조언 내지는 충고를 해주는 것이 윗사람의 도리이자 책임이며, 결국 당사자에게도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에 근거했을 것이다. 반면 틀려먹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아랫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작용하여, 자신에게 그렇게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판단에 근거했을 것이다.


전자와 후자의 가장 큰 차이는 책임과 권한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꼰대라도 발언과 행동이 어디서 나왔는지에 따라 분명 차이는 있다는 얘기다. 물론 내 기준에서는 둘 다 꼰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전자의 경우는 이해해줄 수 있는 근거가 조금은 있다. 사회생활을 거듭할수록 이런 사람들에게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절대 이런 부류의 사람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변한 부분은 있다. 그네들의 이야기 속에 정말로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귀담아들을만한 말도 분명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이상을 추구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처럼 현실과 거리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통제가 필요할 때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통제라는 행위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통제의 방향이 옳을 때는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의 입장과는 별개로, 이렇게 꼰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역시 바뀌었다. 이전 같으면 그런 헛소리는 무시해 버리라고 말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헛소리처럼 들리는 말도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보라고 말하게 되었다. 어차피 현실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꺾는 수준이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말도 분명 있다. 이런 나의 태도가 꼰대로의 변절쯤으로 보인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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