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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13. 2022

어쩌다 쓰게 된 자서전

인생이 전혀 뜻하지 않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느껴질 때가 제법 많다. 주제넘게 말해보자면, 아마도 인생은 철저히 계획적인 인간에게도 계획 밖의 일 투성이며, 임기응변에 능한 인간에게도 미처 대처하기 어려운 일의 연속일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를 제법 잘했고, 의사가 꿈이었다. 어떤 과목이든 상당히 쉽게 느껴졌고, 나는 그만큼 쉽게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맘때의 좋은 학업 성적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중학교 시절 내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교우관계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가정사도 좋지 않았고, 가정형편도 좋지 않았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지냈고, 그저 빨리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랬다. 당시에도 제법 낙천가였던 나는, 살아왔고 살아갈 날들 중 최악의 시기를 보내면서도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그 꿈이 직업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아니라 그저 좀 더 편한 미래를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성적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만 해도 좋은 수능성적만으로도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길로 향할 수는 있었다. 대견스럽게도 선택과 집중에 소질이 있던 나는, 2학년 말쯤부터 내신은 거의 포기한 채 수능 공부에 집중했다. 인생에서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수준의 집중력과 끈기를 보였던 적이 딱 두 번 있는데, 첫 번째가 이 시절이다. 다행히 실전에 강한 편이었던 나는 모의고사보다 더 좋은 수능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어 만족스럽게 웃음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을 갖기에는 어림없는 수준이었는데, 나는 그다지 길게 고민하지 않고 성적에 맞춰 공대로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서 언급했듯 의사는 방편으로서의 꿈이었을 뿐이고, 내 성향상 다시는 이 정도로 열심히 공부할 자신이 없었기에, 재수는 내게 독이 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내가 선택한 학과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학과였다. 이때부터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학교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기였다. 지금의 아내가 된 여자친구도 만났고, 가장 친한 친구도 사귀었고, 희로애락이 어우러진 수많은 경험을 했다. 도중에 군대를 다녀오면서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경험을 했다고 자평한다. 물론 다시 가라고 하면 죽어도 안 가겠지만 말이다. 전체적으로 성적은 엉망진창이었지만,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운 좋게도 내가 선택한 전공은 취업깡패로 알려져 있는 학과였기에 노력에 비해 괜찮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이를 포함한 여러 가지 경험들 덕분에, 나는 지금도 나를 운이 굉장히 많이 따라주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회사생활은 처음에는 제법 즐거웠으나, 갈수록 버거웠다. 업무도, 인간관계도 내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평생직장으로 생각했던, 8년 동안 다니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회사를 홀가분하게 이직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인생은 언제나 안갯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던 이직이라는 행위가 두 번, 세 번으로 늘어나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커졌다.


그 결과 나는 조금은 양면성을 가진, 이중적인 사람이 되었다. 인생이란 어차피 알 수 없기에 별다른 계획은 필요치 않다. 동시에,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자신을 성장시키며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필요는 있다. 그래서 내가 추구하는 바는 무계획적 성장이다. 체계적이지는 않아도 무차별적이고 빠르게 성장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어쩌면 영원히, 인생은 안갯속에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안갯속에서 이리저리 손을 뻗어가며 확실한 무언가를 조금씩이라도 손에 쥐어야 할 필요는 있다. 내게 있어 그 확실한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닌 글이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글을 쓰는 인생을 살기 위해 차근차근 인생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 그렇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그렇게 계속 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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